#묵상일지 2019-06-20 목
베드로를 향한 바울의 책망 / 이신칭의의 정의 / 이신칭의의 적용
바울은 할례자들이 두려워 그 자리를 떠난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사람이 의롭게 됨을 외치면서, 이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자신안에 오직 그리스도꼐서 사심을 고백합니다.
1. 나는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합니까, 아니면 사람의 눈치를 보고 행합니까?(14절)
2.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확신이 있습니까?(16절)
3. 믿음 안에서 사는 증거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무엇입니까?(20절)
#묵상합니다
이끄시는 고모님의 배려로 교회를 다시 다니고 신학도 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졸업을 앞두고 접게 되었고 교회 발길을 끊게 되었습니다. 제 눈에 지나쳐 보이는 아내의 교회활동에 대한 반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발단은 제 믿음이 약해서 말씀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을 보며 행했던 때문입니다. 누구는 바르지 않고, 어디는 부패했고 항상 그런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개척교회들을 돕게 되었지만 말씀보다 사람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제게는 사람에 대한 불만이 결국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들교회를 다니면서도 고개를 들면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라서 아쉬운 부분들이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배와 봉사에 주력했던 예전 교회보다 공개된 나눔, 양육과 목장의 특성 때문에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서 오히려 더 많은 건이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파서 왔고, 날마다 묵상을 하며 말씀과 가까이 하다보니 그런 건들의 우선 순위가 바뀌었습니다. 이제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오늘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이전에는 분노가 많았습니다. 저를 버린 여인들로 미쳐있었고, 불의한 세상에 대해 분노하고, 제 기술과 능력에 의지해서 풀어보려다가 그 한계에 치를 떨었습니다. 아내도 자녀들도 어찌 그렇게 게으르고 잘못된 것은 많은지 다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돌아와 바라보니 가족 모두 그래도 말씀 안에서 사는데 저만 세상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나누고 묵상하다 보니 저는 여인들에게 버림받을만 했고, 제가 불의한데 세상이 불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순서가 아니었고,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서 제 기술과 능력은 그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혈기를 부리던 환경과 상대방들을 통해 저는 은혜를 받으며 살고 있었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왜곡된 인지와 부족하기 그지없는 판단, 게으르고 탐이 많은 저의 행동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대속하신 주의 십자가가 끝이며 또한 새로운 삶의 출발인 것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벽에 새소리가 들립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성남 강의가 있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분들과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적용합니다
쓰고 있는 책 페이지마다 말씀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교회 조차도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떠났던 저를 복음의 진리로 다시 불러주셔서 숨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확신이 없는 부족한 믿음으로 환경과 사람 탓만 하며 삶을 허비한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다시 부르심 받음을 믿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