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일지 2019-06-18 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 택정하신 은혜 / 삼년 만에
바울은 사람의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3년이라는 훈련의 시간을 통해 마침내 바울은 복음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고, 유대의 교회들은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1. 날마다 큐티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의 인도함을 잘 받고 있습니까? (12절)
2.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누리게 된 은혜는 무엇입니까? (13, 15절)
3. 내가 오랫동안 인내하며 훈련받아야 하는 광야는 어디입니까? (18절)
#묵상하기
날마다 묵상을 하게된 것은 제가 너무 힘들고 가족들이 모두 교회에 다니니 가족과 당장 소통할 수 있는 길이 그것 밖에 보이지 않았을 때 입니다. 아내는 제 분야 일을 함께 하며 만나고 그 때문에 결혼한 것은 까맣게 잊은듯이 자녀들이 모두 성장했는데도 제 일에 관심을 가져주면 난리라도 나는 것처럼 제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실 때까지 시원한 대화를 못해본 저는 자녀들과는 그렇게 지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느 사이 더 못한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 말고는 모두 교회다니고 그 날의 말씀을 중심으로 대화를 하니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묵상이고 가족과 대화도 열렸지만 그 보다 삶의 의미에 대해 갖고 있던 갈증과 제게 일어난 고난들의 의미가 하나씩 풀리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세상이 주는 답은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길을 만나면 혼자서 푸는 방법을 만들어 가다가 실패도 많이 하고 성공을 해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던 외로움과는 다른 길이 열렸습니다. 물론 내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닌 기성품을 구매한듯한 모자란 기분은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혼자서 반백년을 좌충우돌 살며 알아낸 것과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오직 영혼구원을 위해 기록한 말씀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지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보이는 곳에 기록하지 않고 잠깐 놓치면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제 한계 때문에 페이스북 타임라인과 블로그에 그날의 묵상을 기록해갔습니다. 새로운 기법과 도구들을 소개하는 글에는 많은 답글과 토론이 달렸지만 5000 명이 다 되는 페친들은 제 묵상일지에 답글을 거의 달지 않습니다. 한 두 분이 가끔 달아주시지만 아내도 자녀들도 달지 않습니다. 저에 대해 제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을 통해 저를 보시던 분들에게는 저의 지금의 모습이 무척 낯설 수 있겠다는 것이 이해됩니다. 그럴수록 남은 삶을 서로의 세상 필요만 맞춘 단면만 보이며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살아온 세상 기준으로 보면 마치 박해받는 것처럼 위축되고 두려운 삶이지만 달리 보면 삶에 대해 진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을 얻어가는 과정입니다. 돈이 우선이고 부자가 목표인 이 나라에서 제 모습을 찾아가고 제 모습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항상 수많은 분들의 찬사와 화살을 동시에 맞던 자리에서 떠나 부족하고 조용한 시간을 사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대화도 배우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법도 배워갑니다. 금전의 생태계가 아닌 말씀의 새로운 커뮤니티들에 속해 매주 서로의 삶을 나눕니다. 함께 사는 냥이 눈 속에서 밤하늘을 물끄러미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제 광야의 시간입니다.
#감사하기
냥이 식량이 떨어져 가족들과 일상을 떠난 대화를 하게 해주셔서
아내가 아파서 묵상을 제가 먼저 올릴 수도 있어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오디즙이 먹을만 해서
#적용하기
제게 오는 것들을 피하기만도, 순응하기만도 않고 말씀과 공동체에 묻고 묵상부터 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날마다 묵상하며 주시는 말씀의 인도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여가며 사는 나날이 은혜인 것을 모르고 불편하고 낯설게 느끼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시는 환경과 만남들이 제가 두고 두고 견디고 성숙해가야할 광야임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