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일지 2019-05-05 주일
하나님은 유다가 하나님을 떠난 동안 의지했던 모든 것을 제하여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혼란한 재앙 속에서도 의인에게는 복이 있지만, 악인에게는 화가 있다고 하십니다. 백성을 돌보아야 할 지도자들이 가난한 자들의 소유를 탈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1.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대신 채워놓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년과 아이들이 다스리게 하신다는 재앙의 말씀 속에서 겸손히 자녀에게 들어야 할 말은 무엇입니까? (1,4절)
>> 여의도에서 교회를 떠난 후로 제 방법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강연 분야도 기존 기술창업 분야에서 1인창조기업과 시니어창업으로 넓혀서 들어오는대로 일을 했습니다. 금액이 낮아도 부산까지 전국을 다녔고 저녁 늦은 강의도 무리해서 했습니다. 가정을 통해 내가 얻을 것은 없고 그저 돌보는 대상이라는 생각에 일에 몰두 했다가 얻은 것이 오른쪽 안면마비였습니다. 치료 받으러 다니면서도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걸음이 흐트러지고 팔이 저렸지만 약속들을 깨지못하고 주저앉은 얼굴에 살색 테이핑을 하고 의자에 앉아서 진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근 10년을 제가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았습니다. 케이블 끊긴 에바처럼 폭주하다가 결국 저슈건처럼 멈춰선 제가 건강과 정신, 일터가 무너져 돌아온 가정에서 아이들은 말씀묵상을 하고 교회공동체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저도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아이들과 관련된 공동체의 권면을 한가지씩 생활에 적용해가는 중입니다. 지나왔던 가치관과 매우 다른 삶이지만 제 업보인 것을 압니다.
2. 주신 사명에 따라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세상의 가치관으로 나를 미혹케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12절)
>> 디지털을 만나면서 나눔에 익숙해졌고 동생과의 이별로 오래 일했던 세운을 떠나 항공사로 옮겨서도 모자란 소통능력과 사회성을 다른 이들을 돕는 것에 의지해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른 동료와 다른 부서들까지 도울 일이 있으면 아침 자율학습 지원부터 주간근무였지만 자정에 한번 더 있는 점심(?)이 익숙해질 정도로 함께 하며 도왔습니다.
빚 갚고 재판들을 거치며 피폐해지고 함께 세웠던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무너지던 때에도 복지관 교육봉사를 하면서 자살 유혹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렇게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나눔은 말씀에 귀를 닫고 살던 저에게 세상과 숨쉬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의뢰로 일한 시간의 두배는 재능기부하는 것이 기준이 될 정도로 학습모임과 봉사처 자문들을 사명처럼 알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보낼 시간이 부족하고 의뢰를 제 기준으로 가려서 받는 경향이 강해진 것도 나눔 가치관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제가 세운 가치관에 미혹되어 고요한 중에 말씀을 의지하는 우선 순위를 모르고 스스로 주인되어 살고자했던 것이 보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 사용하며 겸손함으로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15절)
>> 교회에서는 나온지 얼마 안되어 직분이 없습니다. 삶에서 여러 공동체에서 맡겨주신 직분들을 처음에는 항상 좋게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자리에서나 익숙해져 감에 따라 효율과 효과를 앞세우며 규정과 절차를 건건에 따라 달리 적용하는데 직분을 사용하곤 했습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난을 받으면 겸손한 모습으로 끝내놓고도 오랜동안 분해하며 자신을 상처주는 일도 많았습니다. 상대방이 틀린 것이 확실한데도 우기면 직분을 잊고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일들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벌이곤 했습니다.
제게는 매우 힘든 숙제입니다.
#감사합니다
집안이 고요합니다.
뚱이~랑 많이 친해졌습니다.
이번에 빌려온 책이 재미있습니다. ^^
#적용합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좋은 낯빛으로 이성적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님 아버지 제가 말씀을 떠난 동안 의지했던 모든 것을 제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길을 남겨주심에 감사합니다. 혼란 속에서도 모두 내려놓지 못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돌보아야 할 이들 앞에서 더 겸손하고 지나치지 않도록 발길을 붙들어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