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으라
작성자명 [유영진]
댓글 0
날짜 2019.04.03
#묵상일지 2019-04-03 수
예수님은 전날 저주한 대로 무화과나무를 보고 묻는 베드로에게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할 때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의 허물을 사해주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묻자, 예수님은 도리어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지 되물으십니다.
1. 나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합니까?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고 내가 자꾸만 의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3~24절)
>> 원래도 기도를 못했지만 10년 전에 광주에서 쓰러졌던 이후로 기도하는 것이 더욱 안되어서 날마다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으로 구합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이 모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합니다. 그런데 불쑥불쑥 질문이 스치는 것은 하나님의 외아들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문자 그대로의 부활 이야기인가? 몸이 다시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영원히 사는 것은 이 세상의 기억이 있는 상태인가? 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이루어지면 이 땅에 오류 가득한 우리는 어디까지 남아날까? 나는 죽을 때까지 시험에 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일어납니다.
2. 기도할 때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용서하는 기도를 합니까? 내가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25절)
>>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한명 한명 떠올리는 것 역시 불편해서 뭉뚱거리고 말았습니다. 한 사건 한 사건에서 저와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저 자신의 근본적인 한계를 확인할 때마다 상대에 대한 원망과 불편이 함께 사그라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보이는 이 세상이 제 내면 같습니다. 세상에서 접하는 것들이 그대로 저를 이룬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용서해야할 사람은 스스로 알건 모르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보를 숨기고 왜곡하고 지연시키는 자들 입니다. 그로 인해 일분 일초를 아껴도 아쉬운 삶들이 오인, 오판으로 온갖 갈등과 문제로 뒤덮이는 것 같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제가 그렇게 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입니다.
그런데 그런 저는 제 힘으로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3. 나는 나를 무시하거나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삶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29,30절)
>> 저를 무시하거나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직접 마주치고 싶지 않아 주로 차단을 합니다. 때로는 너무 미워서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의 인생을 망치도록 모아주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또다시 사람에 대한 무시고 함정에 빠뜨리는 것임을 묵상을 하며 알게 되어 차단도 많이 풀고 더 이상 그런 사람들끼리 교묘하게 몰아 엮어주는 것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저와 어떤 상황으로 밉든 곱든 하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제 삶으로 복음을 전하겠다고 마주치는 것은 그들도 원하지 않을 것 같고 저도 아직 달갑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방법으로 찾은 것이 제 묵상을 공개된 곳에 있는 그대로 올리는 것입니다. 제 삶이 변화가 있으면 기록에 남고 자연스럽게 접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저부터 보여질만큼의 삶의 변화가 있어야겠지요.
#감사합니다
열린 세상에 대한 소망을 다시 주셔서
짐으로 지고 다니던 용서의 과제를 깨닫게 해주셔서
삶으로 전하는 사명을 주셔서
#적용합니다
제가 쓰는 책이 말씀의 지혜에 기초하도록 글쓰기 전에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게 기도의 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저 자신과 미운 사람에게 삶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하며 살아온 시간을 용서하소서. 말씀의 지혜가 제 신언서판에 드러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