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좀더 성숙한 큐티엠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작성자명 [박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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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6.08
<출29:29-46>
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큐티는 정말 말썽꾸러기인가?
한 주간 동안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생각 하면서 내가 하고 있는 큐티도 정리 해보았다.
그 동안 혼자만 하다가 나눔을 올리게 되면 좀 더 신중 하게 큐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시도 하였다. 그래봐야 기껏 1주일에 한 두 번이지만. 나의 능력과 시간 등 여러 면으로 고려해 보면서 에베소서를 묵상하면서 결정 한 것이다.
오자마자 큐티 못한다고 야단치는 지체가 있어 정말 그러한가 다시 생각해 보니 더 신중을 기하라는 충고로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매일 꾸준히 올리는 지체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내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 기록도 못하고 있다. 대신에 전체로 연결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중요하다고 생각 할 때만 기록해둔다…… 그것도 1주일에 한번씩.
하루하루의 묵상이 연결이 되어야 하고 그 연결이 하나님의 인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도 제목이나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이 뭐라 말씀하는지 들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잘 안될 때도 있다,
큐티에 대한 훌륭한 이론과 방법들을 많이 들어 왔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훌륭하신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이다.
그런데 큐티 하는 자들에 의해 교회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골치 덩어리로 생각 하고 염려 하는 분들도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보고 들었다.
이론은 다 아는데 실제 행위가 따라 주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말은 옳은 말인데 하고 있는 꼬락서니를 보니 본받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투덜대는 말이 있다 ‘누가 모르나…… 나도 알고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큐티를 지도해준 영적 지도자를 욕 먹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늘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 지속적으로 충실하게 하나님을 만나지 않기 때문 일 것이다.
한때 은혜 받고 기쁨에 넘쳐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변질 될 수도 있고……
그리하여 자신도 불순종의 영의 전략에 말려들기도 한다. 늘 악한 영이 노리고 있다.
정치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큐티엠 속에서도 찾아 올 수 있으니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제자들이 있는 곳 심지어 예수님이 함께 있는 곳에서도 사탄은 찾아 왔기 때문이다.
*다른 지체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우리는 자세히 듣고 정말 그러한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칭찬하는 베뢰아 사람들이 그랬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므로…….”
누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리플을 달았는지 너무 기분 나빠 하지 말고 그것이 정말 그러한가 말씀 속에서 늘 상고 해야겠다.
큐티를 정말 계속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리플 때문에 좌절하고 포기 하는 지체가 있다면
그것 또한 적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고 있는지 분별이 필요 할 때다.
서툴더라도 좀 모자라더라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단 하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말에 다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원망하지 마라’ 는 노대통령의 말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그의 행위는(자살)은 본받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서로를 원망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말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말이 하나님의 뜻에 즉 성경말씀에 일치 한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서로가 원망하다 보면 싸움은 지속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내가 생각하는 큐티의 방향.
나는 좋아하는 운동과 큐티를 연결하여 생각 하곤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해하기는 쉽다, 테니스를 배울 때 포핸드는 이렇게 백핸드는 저렇게 서비스는 요렇게…… 열심히 이론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처음에 배울 때 많은 도움이 된다. 어느 정도 지나면 정석을 무시 하고 엉뚱한 습관이 배이기도 한다. 그래서 늘 코치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계 넘버원 나달도 항상 코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큐티도……. 이론이라 할지라도 종종 점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엉뚱한 습관이 있나 점검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큐티 엠의 경우엔 사람을 의식 안 할 수는 없지만 사람에게 보이려는 큐티인가?
클릭수에 의존하는 큐티인가? 공동체를 세우고 유익을 위한 큐티인가?
자기 의를 들어내려는 욕심인가? 지나친 자기 주관적이며 너무 비약적인 적용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이론도 행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행위가 따라 주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 이론을 다 안다고 큐티를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큐티는 적용이 꽃이라 하는데 생활가운데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완성된 큐티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한 큐티가 머리에서 마음으로 그리고 말과 행동으로 보이는데……. 사람들은 큐티 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것 같다.
큐티 엠에 글을 올린다고 해서 믿음이 좋거나 큐티를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연습을 위해서는 참으로 유익한 것 같다. 경건은 연습을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생각나는 성경 말씀이 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아침에 거울로 자기 생긴 얼굴을 보고 먹칠한 것을 고치지 않고 금새 잊어 버리면 아무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큐티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 하며 스스로 경건 하다고 생각 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면 자기 마음을 속이는 자다. 그러면 이런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했다.
영어 성경은 이렇게 표현 된다. “his religion is worthless.”
나도 늘 점검하면서 조심 하려 한다.
듣기는 속히 해야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겠다. 성내는 것도 마찬가지다…….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말씀이 떠오른다……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에게 늘 말씀을 이해하게 하고 생각나게 하심을 감사 드린다.
* 한주간의 연결 큐티
지난 한 주간 묵상에서 새롭게 느낀 것이 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성전’이 있어야 하고 ‘제물’이 있어야 하며 이를 이행하는 ‘제사장’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묵상하는 출애굽에서 성막과 제단 제사장에 대해 자세히 말씀 해 주셨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지체들의 올린 글속에서 도움을 받았다. 나의 부족한 연결고리가 나의 수준에서 깨달음이 왔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 한 분이 이 모든 것을 다 대행한다. 예수님이 ‘성전’이 되고 예수님이 어린양 ‘제물’이 되며 예수님이 또한 ‘제사장’이라고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눈에는 복잡하게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나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절차’ 즉 요새말로 ‘큐티 하는 방법’을 간소화 시킨 거구나.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구약시대에 비해 훨씬 쉬워졌네…….”
출애굽을 묵상하면서 그 당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요즘과 비교하면 복잡하며 귀찮기도 하다. 솔직히 재미없지만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 앞 회막문’ 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보면서 힘을 얻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먼저 양을 두 마리나 골라야 하고 그것도 아무 양으로 하면 안 되고 한 살짜리 양이다. 한 마리는 아침에 한 마리는 저녁에 소제와 전제로 태워서 드려야 한다. (*소제:곡식을 빠아서 기름과 유황 소금 등을 첨가해서 떡을 만들어 드림 *전제:? *요제? 번제?)
이에 비하면 요즘은 너무 편하다. 컴퓨터를 켜서 큐티 엠에 들어오면 되니까. 게다가 성경 읽어주는 곳도 있으니 참 편하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침저녁’ 이라는 말에 마음이 끌리어 묵상하고 있다.
내가 아침에 잘못 들었는지 하루 동안 들은 말씀대로 제대로 행했는지 저녁때 점검 하는 뜻일까? 대대로 라는 어떻게 적용해야 하나?
*큐티엠이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모든 사람이 스포츠나 정치나 과학이나 건축에 다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대로 현재 있는 장소가 북편이든, 남편이든, 서편이든, 하는 일이 기둥의 역할이든지, 받침목이든지, 연결 고리 역할이든지, 자기 위치에서 자기가 들은 말씀을 그대로 비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좋은 눈이 있어 볼 수 잇는데 너는 왜 볼 수 없느냐고 코나 귀를 보고 야단 칠 필요도 없다. 눈은 나의 머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충고는 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서 도움을 입으므로 연락하고 상합 하되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고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기 때문이다.
특정분야에서 먼저 보인다고 거만해서도 안 되고 나도 누군가로부터 배운 주제에 조금 먼저 알고 있다는 이유로 조금 많이 안다는 이유로 교만해서도 안 된다. 세계1위 테니스선수 나달도 테니스분야에서 모든 면에서 다 일등 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에서는 다른 선수들로부터 늘 배운다는 그의 인터뷰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나달 보다 그 부분에서 더 잘하는 선수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충고를 해 줄 때 기분 나쁘더라도 정말 그러한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은 큐티 엠을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도 좋아하실 것 같다.
자기 의도대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답해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각 지체의 분량대로 하면 된다, 큐티는 모든 사람을 다 감동 시킬 수 없다. 아직 그런 큐티를 본적이 없다.
베드로도 바울도 모든 사람을 다 감동시키지 못하였다.
심지어 예수님도 모든 사람을 다 감동시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관심을 두면 사람에게 보이는 큐티가 되기 쉽다.
요즘 청소년의 음악에 문제점이 보이면 그쪽에 지혜를 얻어 묵상 한 것을 올리면 된다.
정치에 문제점이 보이면 그쪽에 특별히 은사를 받고 성령님의 지혜를 얻어 올리면 되는 것이다.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은 과학 분야에는 모를 수가 있고 음악에 능력이 잇는 사람은 정치 분야에는 관심조차 없을 수 있다.
올려야 한다. 올리되 진실 된 마음으로 하나님 면전에서 대화한 것들을 올려야 한다.
매일이 아니어도 좋다.
그러면 알아서 기도 할 사람 알아서 하면 된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그분의 이끌림을 통해서 기도 하면 되는 것이다. 기도도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전적으로 우리 모두는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다.
* 큐티 엠의 최근 이슈
지난주 글을 올린 리플 때문에 큐티엠이 뜨거웠다.
어느 지체가 나라가 걱정이 되어 함께 기도하기를 위해 리플을 달았다고 하는데
“네 잘 알겠습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이 말이 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고 비판을 하였다. 새로 온 지체라고 했다. 불평이 이것이다. “헤아리는 마음이 없다. 글쓴이의 의도를 파악 못한다.” “큐티가 근시안적이다“ 그의 느낌이니 나는 부인 할 수 없다.
나도 그랬다 ‘기도 하겠습니다.’ 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 해보니 이런 생각들도 있었다.
“그 지체는 큐티 엠의 규칙대로 실명으로 왜 글을 올리지 않고 리플을 달았을까?
리플 단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왜 같은 리플을 여러 곳에다 쓴 목적이 뭔가?
이 지체는 정치의 어느 당의 편인가?
요즘 이단들은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의 지도자를 비판하고 교회의 영향력 있다고 생각 하는 자들을 골라서 큐티를 지속적으로 못하게 한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쪽에 해당하는 걸까?
마음에 우러나오지 않는 기도 하나님이 들을까?“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한다는것은 어떤것일까?
좋은 목적을 위해서는 함부로 말해도 되는것일까?
또한 시간 낭비하며 건설적이지 못한 이런 불필요한 의심부터 생겼다.
“인사치레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기도도 하지 않으면서 기도 하겠습니다.
이렇게 리플을 달아야만 하는가?“
사실 이런 의심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다.
이런 의심은 나의 생각이거나 사탄이 주는 음성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생각들을 숨기고 듣기에 좋은 말만 올리는 것이 큐티엠의 성장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은 아닐 것 같아 올린다. 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큐티엠의 유익을 위해서 좀 더 신중이 생각 할 때이다.
우리들의 발길은 천국을 행해 간다고 생각하는데 천국에 가서도 서로 물고 뜯을 것인가?
이것 또한 이곳에서 연습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새로 온 지체는 이런 불필요한 의심을 초 전에 박살내기 위해서 규칙대로 실명으로 글을 올리면 어떨까? 규칙을 몰랐다면 할 수 없지만 알면서도 규칙을 계속 어기는 것은 인격과도 상관 있다고 생각 한다. 나 역시 좀 더 성숙한 큐티 엠의 멤버가 되도록 힘쓰겠다.
* 내가 큐티를 잘 못하는 것은 지도자 책임인가?
얼핏 생각하면 옳은 말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50명의 학급에서 한 선생님에게 배운 학생들의 성적은 1등부터 50등까지 나누어지는데
공부 못하는 것이 모두 선생님의 책임인가. 이 법칙을 누가 정한 것인가?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인정할 수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나의 잘못된 말과 내가 한 잘못된 큐티는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지도했는데 내가 잘못하고 있는 모든 것이 지도의 책임으로 돌리면 결국은 하나님의 책임으로 돌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와가 그랬다. 아담도 그랬다. 말씀을 왜곡하여 잘못 가르치고 있다면 이것은 지도자의 책임이지만 내가 한 큐티는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리플도 각자의 생각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모두다 똑 같을 수 없고 생각이 다르다고
김양재 목사님 욕 먹이는 것은 아닐 것이고 더군다나 ‘큐티 엠에 탈퇴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나의 경우엔 큐티의 문제점은 지나간 큐티를 쉽게 잊어 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전에 빌립보서 말씀을 큐티 한적이 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그런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일에 순종하지 않는 것 즉 다시 말해서 말씀보다는
자존심에 더 연연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성령님의 인도보다는 불순종의 영을 따르게 된다.
어제 해주신 말씀, 지난주 주신 말씀... 잊어버린다면 이것 역시 지도자의 책임이 아니라 나의 책임이다.
* 사람의 생각 사탄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
큐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 한다.
왜 사람들은 사탄의 음성에 귀 기울일까?
왜 리플에 대해 단지그 사람의 생각인줄 알면서 기분 나빠 하며 화를 내는 것일까?
좀 더 성숙한 대처 법은 없는 것일까?
분별의 영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길을 가다가 짖는 개소리에 모든 개를 다 참견하면 화를 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리플이 개소리라는 뜻은 아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유익한 것인지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
큐티엠 공동체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
날마다 네 생각을 점검하라고 말씀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나와 우리를 인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들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42.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45.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