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든 여인
작성자명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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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6.06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출애굽기 29:4)
젊은 청춘의 어느 날,
하얀 원피스를 입고 타오르는 촛불처럼
자신을 태운 나이팅 게일처럼 백의의 천사가 되겠다고
맹세했던 학창시절의 기억은 아주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신경정신과 병동 간호사로서 4년 째에 들어서니
번복되는 입퇴원과 약물 부작용에 시달리는 환자와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그 가족을 대하는 길은
예수의 심장도 없으니 퍽이나 감당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병원 근무를 평생 하겠다는 생각이 당초에 없었으니,
밤 근무를 마치고 새벽에 퇴근하면서,
임신 초기의 몸이 탈진에 이르니, 미련 없이 사표를 내었습니다
밤, 낮, 오후 3교대를 하니, 강한 체력이 먼저 요구되는 3D 업종인데다
의사의 처방을 받는 만년 2등 인생 같은 구조는
누가 간호학을 전공한다면 말리고 싶은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서 20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9년여의 준비를 하며 반대하는 가족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조국을 위해 싸우다 어린 청년들이 아무런 주의나 돌봄도 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전쟁에 뛰어들어, 42%에서 2%로 부상자의 사망률을 낮춘
등불의 여인은 그 와중에도 틈틈이 편지를 써서 왕실과 세상을 설득하였습니다.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돌볼 수있는 적십자사를 창립하도록 앙리 뒤낭을 돕고
여성에게는 영혼도 없다는 그 세대에 여성과 간호의 지위와 역할에는
정치행위가 더 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참정권을 얻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였습니다
나이팅게일이 단 한 사람, 사촌에게 사랑을 느꼈다는 동성애적 상처는,
상처입은 방어자요, 공격자요, 살인자의 길을 돌이켜,
예수의 심장으로 쳐서 복종하여
상처입은 제사장이요, 화평자요, 치유자가 되었습니다.
모든 가진 시간과 재물과 몸을 허비하여 적십자사를 창설한 앙리 뒤낭이
요양원에서 쓸쓸히 나이 많아 죽어가니, 그를 찾아 낼 적엔
주위에서 아무도 그러한 일을 한 사람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인생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나이팅게일을 선서식을 한 그날을 돌아보며
그 면허증으로 밥이나 먹고 살고 있는 제 인생이 부끄러워집니다.
일대일 교사 훈련조차도 힘이 들어 윗 직분자에게 물어 합리화를 하다가
교사 모집 문자를 또 받으니, 아무래도 나를 부르시나 보다, 신청하였고,
주일 아침 9시 동반자가 없었는지, 좀 더 쉬며 적용하였다고 변명합니다.
책상에 이슬비와 매일 성경을 쌓아두고 틈나는 데로 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워질 아론 제사장에 대한 기대를 안 하니,
지속적으로 기도제목이 응답해 주셨는가?
돌아보는 부문의 리더십에서 낮음 이라고 체크가 되었습니다
큐티를 시작할 즈음
죽어도 좋겠다는 마음을 주셨기에 이렇듯 간신히 붙어왔기에
다른 사람을 인도할 일에 부딪히면 “되어질까요?” 한숨부터 내쉽니다.
회개하는 것이 싫고 두려워
드러나는 죄를 삼갈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니
정말 저라는 인간은 그 악과 교만이 점점 도를 더할 뿐입니다.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말씀을 묵상하지 않았을 때는,
뭘 아는 것이 없으니 적어도 예수님을 죽일 일은 하지 않았 던 듯습니다.
율법에 능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되어
‘화 있을 진저’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니 짐이 곧 국가가 되어
점점 교만해질 뿐입니다.
성경을 보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집니다.
정녕 예수를 죽일까 겁이 납니다.
죽을 때까지 가망이 없는 순도 100% 죄인이라는 사실이
숨이 안 쉬어지고 큐티는 형벌로 다가서고
속았는가? 생각이 때때로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만하면 밖에 버리워 그저 밟히 울 뿐이요,
예수님을 죽일 뿐이니,
어찌 온유와 겸손으로 스스로를 태워 번제를 드릴 수 있을까요?
제가 죄인중의 괴수 신분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게 하시고
먼저 속죄제, 번제로 드리고 나음을 입을 수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재물을 허비하는 것,
시간을 허비하는 것,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
앉고 일어서는 모든 것들이 나이팅 게일과 모세처럼 스스로를 태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우도록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