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더 "
작성자명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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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6.02
널판 가운데 있는 중간 띠는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고(출애굽기 26:28)
엄마(김혜자)는 아들(원빈)이 여고생 아정이를 죽인
살인범이란 말에 정신이 나가 극단적인 폭력을 보입니다
바보 아들 원빈은 바보 소리만 들으면 정신이 나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알콜중독 할머니 슬하에서 몸 팔아 쌀을 사는 여고생 아정이는
남자 말만 나오면 지긋지긋해져 짱돌을 집어 던집니다.
나의 상처는 어디 쯤에 있을까?
시어머님의 속 깊이 내 쉬던 한 숨이
눌려진 날숨 자락을 타고 “후유~~” 빈 공간을 채웁니다.
보기 드문 열정과 호기심이 풍부함에도
이렇게 큐티하는 거 외엔 지속적으로 몰입을 해 본 것이 왜 없었을까?
스스로에게 늘 의문이었습니다
얼마 전,
별로 말을 섞어보지도 않은 나이 어린 동료가 열정적인 사람으로
외국인동료에게 나를 소개하는 것을 듣고,
내 열정은 누가 봐도 보이는 구나! 놀랐습니다
그 열정을 가지고
두 번의 기회를 가지는 드문 삶에도 불구하고
무엇에도 몰입을 두려워하는 스스로가 참 궁굼하였습니다
성막을 만들 되 널판 가운 데 있는 중간 띠,
이 끝에도, 저 끝에도 미치는
그 중간 띠를 잘 붙들어야 합니다
미혼시절에도 호기심으로 터미널 앞에서 현금 치기(?)에 걸려
차비를 싹슬이 당하기도하였습니다
시청 앞에서 지나가는 남자 행인들 틈에 끼어들어 성냥갑을 손바닥에
이리저리 굴리는 것을 유심하게 지켜보느라 같이 가던 동생을 창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그것으로 채워진 박물관일지라도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안 나오는 나 때문에
남편이나 아들은 밖에서 기다리다가 공놀이를 하곤하였습니다
이러한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재빠르게 도망치는 것이 있었으니,
갈등, 대립, 싸우는 장면만은 호기심은 커녕,
놀라서 뛰어 도망치곤 하였던 것을 이제, 깨닫습니다
가치를 필요로 하는 이 단체, 저 연구회 등에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리도 연결되지 못한 것은
대립과 갈등, 북편, 남편 어느 쪽인가로 미치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고모나 삼촌, 어른들은
아빠가 좋으냐? 엄마가 좋으냐? 내게 묻고는
어린 조카가 곤혹스러워하는 것을 즐기곤하였습니다
할아버지 댁으로의 초등학교 4학년에 시작된
부모님의 귀향은 농사일에 적응치 못하고 방황하던
아빠, 엄마의 불화속에 방치되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 우주를 이루는 두 분이 나뉘어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며 싸우는 것은
어린 아이에게는 정말 표현하기 어려운 끔찍한 고통이었으며,
혼란과 불안, 전쟁 중의 이런 전쟁이 있을까요?
어렸지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느 사이 부모가 싸우는 것에 적응하고
한 귀롤 듣고 한 귀로 흘려 듣는 방식으로 적응하던 즈음이었습니다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뉘집 자식은 부모가 싸우면 자식들이 말리는데
인정머리 없이 아빠 엄마가 싸우든지 말든지 관심이 없다고
두 분이 싸우신 뒤에는 엄마의 질책과 비난이 뒤따르곤 하였습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부모가 싸우면 자식들이 나서서, 말린다는데,
인정머리가 없이 부모가 싸우던 말던, 관심이 없다고 엄마는
아빠와 다툼으로 해소되지 않은 감정과 화를 큰 딸인 제게 쏟으셨습니다.
사랑하고 내 존재의 근거가 되는 두 분이 다투는 것도 막막한 고통인데
두 분이 그리 반목하는 것이 내 책임이요,
(맞아요, 예수도 없이 자식을 키우느라 애쓰셨지요)
말리지 못하는 것도 내 책임이요,
위로는 커녕 엄마의 화풀이의 대상이 되는 이중적인 상처가
성막을 덮는 네 개의 널판 곧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게 하는
중간 띠를 찾아 달려 온 시간들이 곧 인생이었습니다
북편이냐? 남편이냐?
이편이냐? 저편이냐? 대립하고 반목하며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대립과 반목을 할 수있는 한 피하여 줄달음쳐 온 시간들이었습니다
죄와 핑계로 치사찬란 그 한 사람, 아담과 하와 부부를
먼저 휘장을 찢으신 주님이 저의 깊은 상처를 드러냅니다
<마더>영화속의 집착과 광기어린 모자가 보이는 상처입은 살인자에서
성막 속죄소를 찢으신 예수님이 화평자가 되시어
널 가운데 있는 중간 띠로 이 끝에서, 저 끝에 미치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오늘도 성막을 지어가시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