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정당활동아닌 회개를 해야하는 시점에서
작성자명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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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5.27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리(출애굽기 23:25)
리더십 역량 평가하는 항목은 모두 대인관계 역량를 평가하며 타인과 대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확대, 심화, 깊이를 더해가는 영향력은 공감할 수있는 감성지능과 더불어 나와는 다른 상이한 다른 사람과의 목표나 적대자의 저항에 부딛혔을 때에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조정할 수있는 협상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나는 다르다는 자기 이해와 나아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똘레랑스 정신과 협상의 기술은 일찍이 가정에서부터 학교로 직장과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다문화 사회가 하나로 통일되어 함께 공존하는 방식인 것이다.
모든 것이 거저가 없듯이 획일주의와 확 들끓어 오르다 식어버리는 냄비 문화와 반상회에서 조차 서로 간에 목소리를 높이어 정해진 사항을 전달하는 경로이며, 자동차 사고라도 났다하면 일단 목소리부터 높이고자 하는 “갑”이 가진 힘의 지배 논리 등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의사결정, 조정과 협상의 기술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훈련되어야 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보이는 성과에 집착한 1960~19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의 기적의 가치에서 이제는 투명함이 요구되는 정보의 글로벌화 사회에 진일보하지 않는 의식이 오늘 날의 제대로 된 대통령 한 명 탄생시키지 못하는 비운의 민족이 되지 않는가 요즘 종일 토록 가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퇴임후에 이웃집 아저씨 처럼 안녕하세요^^ 거리에서 산책하며 눈인사 정도는 할 수있는 대통령을 내 인생에서 만나는 것도 내려놓아야 할 일인가?, 내 후대라도 고레스같은 강대국의 마음이 감동하던가? 어떠한 계기로 평화통일은 이루어 질 것인가?
옳고 그른 선악의 결론에 집착하다가 이것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한 가지 부족한 범법행위를 찾아내다가 전체적으로 민족에 기여한 생생한 경험조차도 순식간에 전무가 되어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을 태우는 오늘의 결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민족적인 비극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 정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성품을 파악조차 못한 CEO 출신 대통령이며, 예수를 아는 대통령이라고 할 것인가? 촌부요, 아무 것도 아닌 나도 그의 성품과 그가 일생을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 철학을 알겠는데, ... 쥐 세 -끼도 몰려면 도망갈 구멍은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는가? 언제까지나 너죽이고, 나 살자는 예수의 십자가정신과 역논리로 결국은 너죽고, 나죽는 제로섬게임, 살사의 게임을 할 것인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을 또 어찌 감당해야 하는가요?
눈에 보이는 전략에서는 승리했다고 하지만, 두고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장기적인 안목으로 전쟁에서 이겨야 전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7분의 1 법칙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기다려주며 서로의 가치와 강점과 경험을 나누며 윈윈 전략으로 상생(相生)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는지요 도와주세요 주님
나의 적대자, 반대자의 무능함이나 약점, 악의 등에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아니하고 영혼구원 목표를 인식하여 다시 궤도에 올라서 긴 안목으로 적대자를 동맹자로 끌어내는 협상의 기술은 전략적 관리 역량의 범주과 정치 역량의 강화가 오늘 날에 필요한 시점 이다.
현재의 우리 문제는 크리스천 내부에서 준엄하게 자기 비판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없어진 고궁을 새로 짓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강조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우리 자신에 대한 통렬한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진정한 과거사 정리란 나 자신의 내부, 기독교 내부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될 것이다.
김용윤 교수와 김용국 교수가 공동 집필한 <한강의 비극>을 읽다보면 이런 자기비판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또한 조선말기 가렴주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정약용의<목민심서>곳곳에 등장한다. 세금을 내지 못한 지아비의 생식기를 자르는 일부터 시작해 강아지나 절구통에까지 사람의 이름을 붙여 세금을 거둬들이고 세금을 내지 못한 백성들의 주리를 틀었던 시절이 조설조 말엽이었다. 저자들은 “조선의 부패가 일본의 침략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쇄국으로 외국의 눈을 피할 것만을 생각했을 뿐 내부에서의 자립과 자각이 없었던 것이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공병호, 부자의 생각, 빈자의 생각)
예수를 믿으면 지금 시국에 나의 십자가를 지고 상처입은 치유자의 베옷을 입고 회개해야 하는 것은 진실한 크리스천 아닌가요? 정치문제만 나오면 단지 이방인 대통령의 ‘자살’문제에만 집착하여 편가르기라도 지지하고 안 하고 ‘그래도 우리는 예수를 믿으니까 예수 믿는 편에 서는 우리는 하나, 기독교 대통령이니깐, 나는 절대 자살은 안할 거야, 우리 자살하지 맙시다, 그것은 나쁜 것이야’ 극히 개인적이고 소극적이요, 초등생의 감상적 우월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가요?’ 크리스천으로서 자존감도 없이 두려운가? 짧은 현대화 시점에서 대통령 9명 모두가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있으며 예측이 불능한 조폭같은 북한 형제가 있고 조류인를루엔자에서 신종인플루엔자 글로벌화된 우리 사회에 2~3년 동안 예측 불허의 방역을 뚫고 전염병은 확산일로에 있는데 어디서든지 ‘갑생활“에 대한 힘의 동경은 폐부 깊숙이 세포마디마디 깊숙이 새겨지어 눈앞을 가리어 줄서고 편가르는 방식을 뛰어 넘어 자살한 대통령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세상의 애도에 손가락질 하는 것을 넘어 동참하고 세상을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오늘 어디에 계시는 가요? 길거리에서 정서적으로 한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않되는 민족의 비운앞에서 우리 민족의 아픔을 이해는 되지 않는가요? 이러한 아픔을 동참하고 같이한 1세대 2세대의 기독교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요?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자기 선이 최고봉이 아닌가요? 당연한 것을 가지고 손가락질 하며 왈가왈부 할 필요는 없으며 내 탓이요, 믿는 나의 탓이요 죽어지는 십자가 사랑이 부족했음을 회개할 시점이 아닌가요? 선거, 정치문제만 나오면 끼리끼리 나 잘했고, 세상 못했고, 집단 이기주의의 이익집단의 로비활동과 구별이 없어지는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크리스천 출신 대통령이 벌써 몇 명이요 국민의 25%가 기독교라하니 이미 기독교는 기득권이 되었는가요? <글이 두서가 없어 죄송합니다>
그저 베옷입고
한국의 병을 내 문제로 내 죄악으로 여기며 상처입은 치유자의 길에서 병을 치유하고 치유받는 길을 열어주십시요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