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빕니다. 특히 이번 주는 정신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어미와 동생 안에 주님이 임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나의 수치심을 들어내는 것은 누구에게amprsquo 고백하는 나지막한 외침이 되었습니까. 제 성품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는 제 의로움과 성품을 버리기 원합니다(보석상자). 우리는 100% 가정을 통하여 죄인으로서 내 자신을 철저히 주님께 복종하는 훈련을 합니다. 저희 가족도 주님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어미와 동생은 각 성품을 버리고 가족이 거룩함을 알기 원합니다.
자신만의 신앙에 갇혀 어려서 부모에게 순종을 못 배우고, 생활로 순종을 배우지 않으면 자신만의 권위와 의로움에 하나님에 대한 순종도 어렵습니다. 순종 하는 삶은 행해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정의 노모와 일가 친적들에게까지 순종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어미는 동생에게, 동생은 어미에게 서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하나님에 대한 순종도 어렵습니다.
지금 어미와 동생은 마치 침몰해가는 저녁 석양에 따라, 어미가 가고 싶어하는 곳과 동생이 오는 방향이 다를 경우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시기인거 같습니다. 서로의 공간이 필요한 하지만 그리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둘 중 한 명은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둘 다 그것은 아마 어둠 속에서 혼자만 있어 본 사람만 느낀 사람만이 공감 할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같은 곳을 향해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로의 모습들이 더욱 초라해지기 때문입니다. 항상 뒤쳐진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이유amprsquo를 찾게 되고, 그것은 매번 핑계amprsquo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동생이 불의 하다고 하는 것은 순종하기 싫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서로에게 통화는 여전히 없습니다. 어미는 하루에도 여러 번 소리 없는 울음을 흘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눈물마저 나오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눈물마저 말라버린 모양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아는지 요리를 할 때면 항상 멍하니 누군가를 그리워합니다. 특히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을 할 때, 무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딸이 왔으면 맛나게 먹었을 것이라고...
오늘도 힘없는 혼잣말에 그만 칼에 손을 베었습니다.
딸은 이야기합니다. 엄연한 가정 폭력이라고...
상처는 쉽게 가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길 원합니다. 지금 어미는 앙상하기만 합니다. 동생의 한 번 못 박힌 상처는 뽑아도 흔적은 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상처가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 때문에 누군가가 예수님을 알게 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저 역시 다르진 않습니다. 저의 삶 또한 모든 것이 연결돼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하나님의 관계가 어떤지에 대해 따라 가정의 평안이 찾아옵니다, 하루에도 거짓된 웃음 속에서 예수팔이로 집안에서 대단한 삶을 살고 있는 영웅의 모습이 마치 유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진정한 예수님은 없고, 가식적인 예수님은 존재하니 말입니다,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찾으려고 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둘이 바라 본 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적이지 못한 삶으로 이전부터 주님을 믿어 왔었지만, 그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었고, 주일만이 주님을 찾는 날이었나 봅니다. 주일 날 말씀을 듣는 것도 몸이 아프다는 좋은 핑계로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삶이 주고 받은 것처럼, 우리의 삶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으로 말씀에 따라 순종적인 삶을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