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으로 지친 곤고한 모든 이들의 품이 되어주시는 주님의 은총이 그들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오늘도 우리의 보석 상자 안에서 기름 부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삼상2:10). 제 삶 속에서 재수라는 시간을 통하여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한 두 명씩 연락이 단절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외로움은 하나님과의 만남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때문에 하나님과의관계가아닌 본향의교우들과의만남을위해먼 거리에 있는교회를 주일마다 1시간씩 찾았습니다. 오늘이야 1시간 정도야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거리입니다. 그럴 때면 재수라는 선택을 왜 했을까 라는 의문을 던지고 후회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땐 수험생활이 공부만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외로움과 싸움이었습니다. 주님은 일찍이 ampldquo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ampldquo(요8:14)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삶의 뿌리와 목표를 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주님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아셨기에 현실의 난관 앞에서 좌절하지 않았고, 가야 할 곳을 아셨기에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이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이 타락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시간을 공간화 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가시적인 것을 통해 자기 삶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며 삽니다. 어떤 대학, 어떤 학과, 수능점수 몇 점.. 그러나 생의 근본적인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자녀가 가십거리로 필요하고, 이에 어울리는정보가 필수적 요소로 생각하는 우린, 학벌 위주의 세대를 넘지 못한 채 지난 수십 년 동안 살았습니다.
얼마나 학벌이 중요시 되었으면 강남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첫째는 할아버지의 재력이요. 둘째는 아버지의 무관심이요 셋째는 어머니의 정보력입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분별을 통한 통찰력으로 첫째, 둘째, 셋째 조건이 아니어도 충분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각 부서에서 축하한다는 이야기가 먼저 나오기보다 슬픔에 빠져있는 지체들과 하나님을 찬양하길 원합니다. 자신의 노력을 그리고 하나님께서 끝까지 함께 해주심 함께 찬양하며 그들의 노력이 묻히질 않길 바랍니다. 제가 들었던 시골 교회에서 수능 시험 이후 교회에 나오지 않은 지체들이 하나같이 자기들은 관심 밖의 소년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들을 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학교나 학원처럼 자랑거리로 변하면 이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들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제 수능 보는 자리에서부터 합격의 순간 높고, 낮은 대학으로 구분되는 찰라 이들의 찬양은 낮아지지 않아야 합니다. 박수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대학이 학벌 위주가 아닌 모든 대적과 비방을 하나님께 넘기기 원합니다.
물론 수능을 열심히 준비해서 우리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축하합니다.
그리고 아직 긴장 속에서 수시와 논술 그리고정시를 준비해야 하는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길 바랍니다.
모든 수능 본 학생 여러분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감독선생님 감사합니다.
수능이 모두에게 박수와 입술로 찬양하는 잔치의 날이기쁨이 넘치는 날이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