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빕니다. 특히 이번 주는 정신적으로 제 자신 안에 주님이 임하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매일의 삶이 살아 호흡이 있으면 영화롭고 찬란합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여전히 어지럽고, 여기저기 풍문처럼 떠도는 이야기들로 사납기만 합니다.
교수님들께서 주신 사랑은 아직 졸업유예 문제가 어둠 가운데 있지만 빛을 향해 고개를 들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교수님과의 사귐amprsquo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사귀다amprsquo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가까이하여 얼굴을 익히고 사이좋게 지내다amprsquo입니다. 사귐을 뜻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amprsquo는 친교, 나눔, 참여, 기여 등으로 번역됩니다. 진정한 사귐은 생각과 비전을 함께 나누고, 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손을 맞잡는 것입니다. 고난에 동참한다고 번역된 단어가 바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문제와 고통을 함께 해주셨을 거라 믿어야 할 시기 인거 같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마음이 위로를 얻기에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 스산함이 몰려 올 거 같아서입니다.
저는 어렵게 로스쿨에 입학하고 2학년 도서관에서 갑자기 뇌농양으로 쓰러질 때부터 마음이 스산할 때면 시인 안도현의 새해 아침의 기도amprsquo를 읽곤 합니다.
ampldquo나 자신과 내 가족의 행복만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한 번이라도
나 아닌 사람의 행복을 위해 꿇어앉아 기도하게 하소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가 시냇물처럼 모여들어 이 세상 전체가
아름다운 평화의 강이 되어 출렁이게 하소서.
새해에는 뉘우치게 하소서.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과,
남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던 불끈 쥔 주먹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 번도 기분 좋게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 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을 참으로 부끄럽게 하소서.
무심코 내뱉은 침 한 방울, 말 한 마디가 세상을 얼마나 더럽히는지,
까맣게 몰랐던 것을 부끄럽게 하소서.
그리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새해에는
부디 뉘우치게 하소서.amprdquo
이를 읽으면 내가 배운 법학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인류학자인 김현경 선생은 #039인간#039과 #039사람#039을 구별해서 설명합니다. #039인간#039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입니다. 생명을 받아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인간입니다. 그러나 #039사람#039은 #039사회적 인정의 문제#039입니다. 인간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머물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설 자기를 배정받지 못한 이들, 사회나 집단이 어떤 선택을 하든 늘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들은 #039사람#039으로 취급받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집단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 자기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 안심하면서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다른 이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고, 이웃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는 것이야말로 제가 학습한 인간의 존엄과 존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구절이 나오고 지금의 제 처지에 외로움과 두려움이 사무칠 때 저기 어딘가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습니다.
로스쿨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졸업시험과 학점이수가 필요합니다. 물론 저는 학점이수는 2018. 1학기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몸이 안 좋아 1학기를 휴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휴학 후 2017학년에 1,2,3차 모의 고사에 응시 했으며, 2017년 휴학한 자가 2017년 졸업시험에 통과되는 기상천외 한 사건이 이루어 졌습니다.
또한. 2017년 졸업시험 통과(?) 했다고 하더라도 2018년에 적용되어야 맞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7년 휴학 한 자가 통가 된 것도 그러하고 2018년 당해 연도에 적용된다는 사실은 그 동안 관행상, 그 전해에 합격한 졸업시험이라고 하더라도 그 다음해에 적용된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관행적이고 통상적인 사실이라, 놀라기 그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 한거처럼 누구나 인지하고 있었으며 통상 졸업시험자가 다음 해에 통과자로 된 사례는 찾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픈 나를 빨리 졸업시키고 싶은 가 보다고 비웃기까지 하곤 했습니다.
이럴 때면 학교 측에 더욱 원망스럽고, 원칙도 이유와 설명도 해주지 않음에 슬펐습니다.
ampldquo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사랑으로 돌봐주시네/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amprdquo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만 자꾸 바라보면 우리 마음이 황폐해지기 쉽습니다. 희망이 희망이기 위해서는 쉽게 낙심하지 않는 끈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소리에 학교 측이 합격이라 할지라도 절차상 하자가 있다면 어떠한 이유가 있더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아이들의 이야기가 참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휴학기간이 졸업시험에 포합된다고 하며, 휴학 후, 결과가 발표했음은 명백한 불합격입니다. 휴학은 28일이었고 합격자 발표는 29일입니다. 이는 결과를 모르고 합격...휴학...
분명 명시 되어 있는 1,2,3차 시험에 응시하고 합격한 자. 그런데 결과를 모르는 데 합격 통보는 누가 봐도 불투명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절차적 하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통지의 하자로 권익을 제한하는 처분에 해당하고 사전 통지의 대상이나, 절차결여로 위법했습니다. 물론 학교 측은 알고 있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정답은 하나뿐입니다 수많은 오답은 생각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답은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미 결정한 사람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하듯 로스쿨은특성상 하계졸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제가 최초의 1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바로잡음이 더욱 어려웠습니다. 학교 측과의 이야기는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고, 저는 자꾸 모두에게 패자로 그리고 가십거리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승자만이 인정받는 세상, 경쟁을 내면화하고 살아가는 세상은 소수의 승리자들과 다수의 패배자들이 갈리는 세상입니다. 승리자들의 오만과 패배자들의 한숨과 원망이 넘치는 세상은 위험한 세상일 뿐입니다. 학교 측에서 건투를 빈다amprsquo는 진정성이 없는 말은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출세하라는 세상의 노골적인 가르침에 잇대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상에 사는 이들은 누구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많아집니다.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은 점점 사라집니다. 집 밖 세상은 적대감에 가득 찬 공간처럼 생각되기 시작하고, 온유하고 따뜻하고 선한 눈길과 만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매번 질의에 답변은 항상 늦었고, 승자인 부유한 자의 입장에서 이런 늦장 답변은 지금까지 가난한 저로서는 학습 한 교육방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행정 대응은 마음이 부자인 자들의 나태하고 교만한 행동입니다.
부자는 결코 가난 한 자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권세를 갖고 사람을 지배 한 사람은 어떤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답변하는 것도 웃긴 행동이라 생각 하여 마지막 날 동전 주듯 한 푼 줍니다. 그리곤 위로 하는 모습이 선행으로 생각합니다. 이들과 항변할 길이 없지만 최소한의 물줄기로 갈증을 달려 보려는 가난한 자의 모습이 생각나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배려는 받는 사람이 고마움을 느낄 때 성립됩니다. 자신만이 생각하는 배려는 오만과 교만입니다. 저는 이 배려로 정신적인 피해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가십걸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서 자유란 압제자가 자발적으로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피압제자들은 투쟁을 통해서만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039기다려라, 알아봐 주겠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 말은 저에게 물론 약자 누구나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일 것입니다. #039기다려라!#039라는 말은 대부분 #039안 돼!#039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저명한 법학자의 말처럼 #039정의의 실현을 지나치게 지연하는 것은 정의의 실현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039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릴 것을 다 누리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039기다리라#039고 하는 것이 얼마나 기만적인 말인지 모릅니다. 그 기만적 속임수에 도전하면서 자유의 지평을 조금씩 확장해가는 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
벌써부터 몇 명이 이런 사실을 알고, 특혜를 받은 것으로 오인하고 있습니다.아이들과 교류하지 않은지는 며칠이 되어 가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짓 잘못하면 졸업에 대한 모정치인의 자녀처럼 오인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학교에도 저에게도 누가 되지 않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