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런데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서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ampldquo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심하십시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 그 뒤에 인구 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들을 꾀어서, 자기를 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일이 있소. 그도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다 흩어지고 말았소. 그래서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바는 이것이오. 이 사람들에게서 손을 떼고, 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오. 이 사람들의 이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할 것이요, 하나님에서 난 것이면 여러분은 그것을 없애 버릴 수가 없소. 도리어 여러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봐 두렵소.amprdquo 그들은 그의 말을 옳게 여겼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뒤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하고서 놓아 주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그리고 이집 저집에서 쉬지 않고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
추석연휴 동생과 엄마의 불화가 어떻게 역사하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1.동생은 저의 오랜 공부로 인한 산더미처럼 쌓인 책이 쓰러질까봐 엄마에게 정리하자고 이야기 하고,
2.엄마는 동생이 이 집에 자기 물건은 대체 뭐가 있냐며 육두문자를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집을 나갔다고 하고,
3.동생이 가을 공허함에 더 공허 했을 공원에서 추운나머지 친구 집에서 잔다고 연락하고,
4.연락 받고부터 설마 들어오겠지 하면서 날을 지새운 엄마
다음 날, 어디 외박을 하냐며 역까지 쫓아가 기어코 대중 앞에서 뺨을 때린 엄마
그리고 여기 우리들교회에서 망신을 주겠다는 엄마,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부풀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추석 날 화합과 만남이 아닌, 불화와 이별인 것은 맞습니다.
서울에서 지내고 불편한 몸으로 추석 연휴를 홀로 감당했는지 조차 말하기가 불편한 상태에서
ampldquo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여러분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살리셨습니다.amprdquo(행5:29-30)
추석연휴 동생이 마치 사도들이 행한그들이 공모하여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다고 말하면서, 그분이야말로 영도자와 구주라고 증언한 것과 같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평화 보다 경건의 의상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의 민낯을 폭로함으로 자극을 주었으며. 이는 산헤드린 공의회 사람들은 격분한 것과도 같습니다. 사도들의 증언하는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들이 더욱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지금껏 하찮게 여겼던 이들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이야기하는 그런 상황이었을 겁니다. 엄마는 눈만 치켜떠도 고분고분 복종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아니오amprsquo라고 말할 때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정말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뺨 한대를 때라고, 우리들 교회에 난동을 부리겠다고 하는 말씀은 이제금 화목으로 화답하실 하나님의 계획의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맥없이 사는 것은 어떻게든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 다치지 않으려는 소심함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아무리 애써 보아도 삶은 힘겹고, 피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일들이 소리없이 다가와 우리를 확고히 사로잡기도 합니다. 저는 아주 오래 전에 김달진 선생의 한 문장을 통해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ampldquo인생이란 큰비가 쏟아지는 광야를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달려보아도 헐떡거려보아도 비에 젖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먼저 젖기를 각오하시오. 그리하여 비를 맞으며 유유히 걸어가시오. 젖기는 일반이나 고뇌는 적을 것이다.amprdquo(김달진, <山居日記>, 세계사, 1990년 5월 30일, p.100)
젖기를 각오하면 인생이 가벼워집니다. 젖지 않으려니 전전긍긍이지요. 엄마와 동생은 지금도 서로 젖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신을 내려 놓지 않고 서로 사랑을 갈구하면서 자신을 사랑하는거 맞냐고 묻습니다. 웃기는 질문이지요? 사랑은 예수님 한분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부모님은 당연히 십계명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공경의 대상이지 공격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녀는 복의 근원입니다. 이런 자들은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하지요.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들에게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amprsquo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amprsquo라는 시도 같은 진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세상살이가 힘겹다고 하여 투덜거리거나 애상에 빠지지 말자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ampldquo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amprdquo
외롭지 않으려니 외롭습니다. 치열하게 살지 않으니 조건이 어떻다는 핑계를 자꾸 대며 주저합니다. ampldquo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amprdquo라는 구절이 큰 도전이 됩니다.
3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