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지금 흘리는 눈물이 구원 때문인가,
자기연민 때문인가?
으악 목장에 너무 가기가 싫다 .
네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첫째.못생기고 게으른 사람
둘째.남편이 있는데도 감사할줄 모르고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
셋째.자기가 이혼하고 외롭다고 하는사람
넷째.아이도 없는 노처녀
다섯째.아들,딸 낳고 잘사는 행복한 가정의 사람
이 모든 유형이 다 골고루 목장안에 있다.
동생이 청년부에서 목원인 나보다 먼저 부목자가 되더니 이제는 예비 목자훈련을 받고있다.
거들먹 거리는 동생을 보며 오죽할사람이 없으면 너를 시키겠냐하며 무시했지만
부목자의 자질은 목원의 나눔을 들어주고 또 들어주며
체휼해주는 역할이라는 말에
#039아~ 나는 그게 나무 안되는데#039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IF..만약 내가 부목자,목자가 된다면...하고 생각해보니,
지금도 듣기힘든 나눔에는 몸을 베베꼬며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고 마무리 기도가 끝나자마자 도망가듯 목장을 떠나는 내가 체휼이 가능하기나 할까?
위에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들의 나눔을 들으면
내 속에서 항상 똑같은 말들이 메아리친다.
#039그게 힘들어? 그것도 고난이라고 나누고 앉아있냐?
남편 죽은거보다 힘들어?
그래서 너가 깨달은게 뭐야?
지금 가진것도 감사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너한테 뭘 어떻게 해주시겠냐?
이혼도 너가 선택한거니까 당해야지 뭐 어쩌겠냐?#039
이렇게 글로 써놓고보니
내 속에는 체휼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게 더욱 와닿는다.
목원으로도 나눔 듣는게 이렇게 힘든데
내가 지경이 넓어지기는 할까?
처음 목장 개편했을땐 사회성 좋은척 착한척하며 좀 버티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그냥 목장을 안나간다.
정확히 안나가는게 아니라 못나가겠다.
내 한계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처음에는 구원때문에 흘리는 눈물이었지만 나중에는 자기연민의 눈물로 바뀌었다고 하는 사무엘상 말씀처럼
나는 일대일 양육할때만 남편의 죽음이 나의 구원을 위한 사건이었고, 지금까지 기승전결 자기연민의 눈물인것 같다.
나의 무능함과 끈질기게 변하지 않는 내 자신을 본다.
다윗도 눈물을 거두고 백성들에게 나아간 것처럼 나도 다시 공동체가 있는 목장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