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인 사건이 몰고 온 결과
작성자명 [순정 하]
댓글 0
날짜 2009.05.06
한 삼주전인가
정아 집사님께서 설교 테프를 갔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분의 설교를 들으며
가장 기뻐했던 것은 그분도 나처럼
하나님을 아빠! 아빠!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기도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내 아빠로 확신하는가에 기도 응답의 비결이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물론 기도 응답이라는게 총체적인
그분의 말씀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분의 고백도 수용할만한 신앙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한량없는 성령으로
상상을 초월하시는 은혜를 퍼부어주실 때
가장 큰 은혜의 절정은 그분이 바로 내 아빠라는
각인을 시켜 주시는 장면이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살면서 가끔씩
그 장면을 다시 끄집어 내여
얼마나 날 사랑하면 그 아들의 생명일지라도
아끼지 않고 내 죄값을 지불하게 하사 날 당신 품속의 자녀로 삼았을까?
묵상하노라면 영혼이 아릿 아릿하다못해 하늘 향해 크게 크게 아빠야!를 부를
수 밖에 없는 그리움이야말로 내 영혼의 가장 순수한 본능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 오시기전인 다른 세대에서는
감히 하나님을 자기의 아빠라 부를 수 없었으나
부활의 주로인해 그분의 아버지를 나의 아빠로 부를 수
있는 사건은 가히 우주적인 혁명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아빠라 부를 뿐만이 아니라
말씀이신 아빠와 함께 살아가는 이 은혜의 경륜은
필히 아직도 이 비밀의 경륜을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져야만이 완성되는 아브라함의 복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가운데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는 말씀을 보니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앞으로 담력과
즐거움을 가지고 나가라는 히브리서의 말씀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어느 특정한 제한된 시간이 아닌
때를 따라 언제든지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만도
대단한 특권인데 거기다 더 얹혀 담력과 즐거움을 지니고 나가라는 말씀!
생각컨대
담력과 즐거움은
아빠라 부를 수 있는 혁명적인 사건이 가져다 준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
그렇게 허락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아빠!
그렇게까지
때마다 날 도와주고 싶어하신다니
아빠의 그 마음만 받아쥐고 살아도
이 험한 세상 능히 이기며 살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여기 네이버 성경지식에 나오는 주석을 함께 올립니다
신 예지님의 기도 부탁을 받으며 느낀 것이 있어서 올립니다
아무런 언어적 기교나 위선의 탈없이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감정을
털어놓은 글을 읽으며 나는 언론의 자유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도 하늘 아빠앞에서 그렇게 해야겠다고 느끼면서 말입니다
담대함 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르레시안 (* )과 나아감 의 헬라어 프로사고겐 (* )은
담대히 나아감을 강조하기 위한 이사 일의(二詞一意)이다(Lincoln). 여기서 파르레시안
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를 의미한다
(2)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히 4:16;10:19, Foulkes).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파르레시안 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나아가며 동시에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아뢸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징계하시며 심판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이라기 보다는 언제든지 나아가서
대화할 수 있는 친근한 아버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