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다윗의 눈물의 기드론 시냇가를 건너는 장면이다.
이스라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 돌아갔다는 말을 들은 다윗은 즉시
신하들에게 ampldquo일어나 도망하자amprdquo 한다..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두렵기에 빨리 가자고 한다 .(14절)
그리고 먼저 백성들을 건너게 하고 , 마지막으로 다윗이 기드론 시내를 눈물로 건넌후
광야 길로 향한다.(23절).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성이고
다윗은 백전노장이고
죽을 각오로 싸우면 얼마든지 승산이 있는 전쟁이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큐틴 본문해설에 나와있다.
다윗은 왜 그랬을까?...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굉장히 미워하기도 한다.
압살롬처럼 분노와 혈기가 있고,
엄마의 데시벨에 예민하다.
주일설교에서처럼 손발이 가는 섬김이 없어 서고
마음을 만져주지 않고
가르치려고 했기에
온
결론이다.
어려서 아이들이 대들면 야단을 치거나
싸워서 엄마의 주장으로 누르며 이겨먹었다.
그런데 머리가 크고는 그럴 수가 없다.
압살롬같이 직장생활을 하며 돈으로 힘이 생기니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데 왠 간섭?? 하며
원룸으로 나가 독립하겟다고 대든다.
다윗처럼 싸워
엄마의 주장으로,, 엄마의 권세로 누를 수 있지만,
눌러서 되는 게 아니란 걸 일찍 알았고,
누르면 누를수록 분이 쌓이고
관계는 멀~~리 가게 되고,
복구전은 더 많은 시간을 요하니
싸울 수가 없다.
물질고난이란 인생의 채찍으로 인해
먹고 살아내기에 쫓김을 당하다 보니
그런 엄마로 인해 아이들의 힘듦을 살피지 못했다.
아이들이 이제사
그때 힘들었던 마음들을 쏟아내는 표현이
이렇게 치우침으로 드러나는 것을 알기에..
당시 나의 믿음의 분량을
인정하며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없는지..
나의 부족과 약함을 인정하며
아이들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도 불쌍하고,
아이들도 불쌍하고..
그런데 먼저 말씀을 들은 내가
눈물의 기드론 시내를 건너며
아이들이 돌아오도록
기도하며
분노를 받아내고 ,
때론 힘들어서 넘어지지만,
구원 때문에 섬기기를 놓지 않고,..
때 늦은 복구전을 치르는 광야를 가야한다.
그런데 다윗의 이런 적용을 주님이 보셨다.
주님이 보시고 기억해 주시면 족하리~ 찬양가사처럼
오늘도 주님이 기억해 주시면 족하리~로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기드론 시내를 눈물로 건넨 다윗을 따라~
자기 방어를 내려놓고
나의 구원을 위해
설득이 아닌 죽어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이런 나의 약함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언제 아이들이 하나님께 돌아올지 모르고,
구원 때문에 어떻게 아이들의 맘을 만져줘야 할지...
광야길이지만,
하나님의 때로 올려드려 본다.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압살롬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상처를 쏟아내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아닌
가해자로 섰던 저의 죄가 너무 커 보여서 아프고
그것을 고스란이 쏟아내며
또다시 자기 정죄로 빠질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눈물의 기드론을 건널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그러나 오늘 다윗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며
회개로 주님께 삶을 드려
회개한 것을
압살롬에게 가르치고,
비록 압살롬이 알아채지 못하는 섬김을 하며
가는 다윗을 보며
저도 그렇게
그렇게
그 길을 걷도록 말씀으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처럼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언제 아이들의 방황이 마칠지 ,
언제쯤이면 상처가 별이 될지 모르는 광야길을 가도록
주님께만소망을두고
이 광야길을 걸을 수 있도록
성령님 함께 해 주세요.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예배 회복되어
인생의 방황을 멈추고
사명을 찾아가는
청년의 때를 허락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