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2일 주일
■ 제목: 나의 간교함
■ 성경말씀: 사무엘하 13: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subtil man)라
■ 묵상
1.본문에서 암논이 압살롬의 동생 다말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본 친구 요나답은 비책을 알려주는데, 성경은 요나답을 간교한 자라고 강조한다. 간교amprsquo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 단어가 나오는 것을 계기로 내가 [간교]했던 일이 생각난다. 나의 간교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⓵ 지인이 공적 프로젝트를 신청하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이미 은퇴한지 2년반이나 지났으므로 아는 정보와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도그 사람은 이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재단을 설립하게 되는데 재단설립에 자문역할로 모시고 싶다고 했다.6월말로 완전 백수가 되는 나로서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적극적이지 않고 멀찍이서 간접적으로 도우면 큰문제가 안될 것 같았다.과거 이러한 일을 담당했던 경험을 바탕으로어느 시기에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무슨 회의가 열릴 때는 어떻게 대응하라는 코치역할을 했다.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프로젝트에 떨어졌다. 그 사람은 내년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한다. 나는 내년에는 도움을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혹시 그 사람이 그 프로젝트에 선정된다면 취업의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간교한 마음이 자리잡는다.
⓶과거 공직에 근무할 때는 매일 전술전략의 싸움터였다. 전략이 없는리더는 무능하다는평을 듣는다.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집단이 함께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고,매일 벌어지는 것이므로 죄의식조차 못느낀다. 큐티를 제대로 했다면 분별하면서 했을 것이다.
⓷ 말석에 떨어지고 나서 보직 복귀를 도모하기 위해 직장에서 금주를 선언했다. 전략적 금주였다.소문을 낼만한 사람에게는 금주를 했다고 했지만 동창이라던가 직장과 무관한 사람과는 음주가무를 즐겼다. 이 경우에는 하나님은 나의 간교함을 역이용해서 전략적 금주를완전금주를 바꿔주셨다.
⓸ 초등 1, 2학년 무렵, 동네 패싸움을 했는데, 상대편 리더가 우리편 리더인 둘째 형보다 힘이 세보였다. 그래서 5살 정도 많은 상대편 리더를 홀로 찾아가서 형과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그 선배는 그날 묵묵부답이었고, 패싸움도 그치지 않았지만 어린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스스로도 궁금하다. 작년 초등학교 총 동창회에서 그 선배를 만났는데,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둘째형을 아쉬워했다.
초등 3학년 무렵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멀리 운동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고등학생 마라톤 선수를 놀렸다. 대회에 나가면 성적이 좋지않다는 소문이 난 선수이다. 다소 떨어진 곳이라서 잡으러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 선수가 우리를 잡으려고 뛰어 왔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도망질치는데 나는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걸었다. 그 선수는 나를 지나쳐서 보리밭에 숨어있는 친구들을 찾아내어 응징했다. 이렇듯 나는 태생적 간교함이 있는 것 같다.
⓹ 지금 목장예배를 리더하는 나에게 어떤 간교함이 있을까?목장 예배에도 나의 간교함이똬리를 틀고 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므로 기본적으로는 진정성을 가지고 하지만, 비난받는 것을 두려워해서 가끔 진정성이 없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인기관리도 한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간교함은 더 많을 것이다.
2. 어제 먼 길 문상을 다녀왔다. 오가는 길에 친구와 기독교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그 친구는 교회 다니는 사람의 위선적 모습이 너무 싫다고 하면서 자신은 준비가 다된 후에 교회를 다니겠다고 했다. 자신의 기준이 확고한 성향이다. 운전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즉각 화를낸다.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그 모습이다.
고교는 동창이지만 중학교는 1년 선배라서 선배의 예를 어느 정도 갖추는 나에게는 정을 베푸는 친구이자 선배이다. 그 친구 아내는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사업을 하는 그 친구는 대외활동이 많고 죄 짓는 환경에 늘 노출되어 있어서 그런지 교회를 다니는 것을 미루고 있다.
나의 경험을 돌아보니 나와 유사했다. 나도 한때는 교회당에 들어가면 우울한 감정이 있었다. 하나님이 두려웠다. 퇴근하면서 하루를 결산하는 버릇이 있었는데,오늘은 기독교인으로는 몇 점짜리 하루였다고 채점까지 하면서 우울했었다. 이러했던 내가 지금 다니는 공동체에서 이 부분을 극복하고 있다.
우리들공동체에서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친구에게 이야기했지만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말만 강조했다. 나는 그 친구의 그 강조 속에 희망이 있음을 보았다.
그러다가 오늘 새벽 우연히 이런 글을 읽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죄인의 모습 그대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한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변화되어 가는 것을 원하신다. 비천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할 것을 요구하신다』
3. 최근 큐티 주제인 사무엘하에서, 다윗은 간교한 방법으로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탈취했다. 그리고 밧세바와 사이에 난 아이를 살리기 위해 7일 금식기도를 했지만 아이가 죽자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시 밧세바의 침실로 들어갔다. 내기준으로는 밧세바를 포기하는 것이 적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장예배였다면 그렇게 권고를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주 목사님 설교에서 계시록 21:4절의 눈물은 어떤 눈물일까를 생각해 보았다.다윗은 경배와 기도를 하면서 계시록21:4의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닐까? 며칠간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공예배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그리고 나도 그런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하나님께 경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분수령적인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하나님께경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쫓기듯 숙제하듯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다윗의 경배를 나의 경배와 동일시한 것이다.
■ 적용하기
1. 친구에게 큐티와 목사님 책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2. 계시록 21:4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진정성있는 기도와 예배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