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삼하11:14-27
다윗이 왜 그랬을까?
일개 목동 다윗이 왕이 되어 왕으로써 왕답게 잘 살았습니다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남편과 결혼하여 아내로서 아내 답게 잘 살았습니다가 내 삶의 끝이 아니었다 알고보면 나는 나로서 잘 살아 보려 했지만 궁극적으로 아내로서 잘 살려고 결혼했던 것은 아니었다 큰아들로써 우대를 받으며 별 어려움 없이 자란 사울의 딸 미갈같은 남편은 자신의 공부와 자신의 성공만 보며 이혼가정에서 자라 애정결핍이던 나를 더 깊은 외로움과 우울의 절망에 빠지게 했다 나는 그 외로운 시간 일과 간음했고 자기 개발과 간음했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IT업계 직장에서 남편보다 나에게 잘해주는 호의적이고 친절하고 똑똑한 남자 직원들을 보며 내가 남편과 결혼할 사람이 아닌데 사람을 잘못 만나 이렇게 되었구나 하며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남편에게 공감 받지 못하는 맘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 받기 위해 직원들과 어울려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며 워크샵을 따라가고 롤러브레이드를 타며 어울려 놀았다 그것이 외로운 결혼 생활을 견디는 방법이었다 그것이 남편을 기대하며 실망하지 않고 괴롭히지 않고 싸우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이었다 남편 앞에서는 전혀 외모를 꾸미지 않았고 씻지도 않았다 직장에 갈 때는 무엇을 입을지를 남편에게 상의했고 온순한 남편은 건성으로 답해주며 그런 나를 귀찮아 했다. 결혼 전 함께 살던 여동생처럼 남편을 대했다 남편은 남편의 역할이 아닌 내 여동생의 역할을 했다 물떠다주던 여동생. 백수인 남편이 내게 해줄 수 있는 몇개 안되는 호의였다. 남편에게는 내가 보호자가 되고 엄마가 된것처럼.. 분리불안이 있던 나와 자폐성향의 남편, 우리는 이상한 의존관계가 형성되었다 그것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지 않았을까? 서로의 결핍에 의해 변질된 우리의 역할은 아내와 남편이 아니니 우린 영적 간음에 대한 죄책감을 서로 간에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남편의 몸과 마음이 여직원에게 움직이기 전까지 남편이 가출하여 돌아오지 않게 되기까지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남매처럼 모자처럼 살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을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잘 모른다 우리 부부 주위에 말씀있는 나단같은 선지자는 없었고 요압같은 동료들만 있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이러한 결핍을 합리화해주고 위로해주고 덮어주는ᆢ 이제 말씀있는 나단같은 공동체를 만나 내죄를 보았다 부부관계가 순결하지 못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도 순결하지 못함을 알았고, 내가 빌면 하나님은 주어야 하는 이상한 기복의 관계였다는 것을, 남편도 하나님도 내 남편과 하나님으로 여기지 못하고, 인본적으로 따뜻하게 덮어주고 내뜻대로 내편이 되어줄 요압같은 존재가 되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내 욕심을 하나님도 하나님대신 나를 위해 세운 우상같은 남편도 채워주지 못하니 마음의 벽을 쌓았던 것 같다. 지금도 내눈과 귀는 하나님보다 내 필요에 집중되어 있어서 어디서 왜 피가 흐르는지 모르고 힘들어 하고 있다 예배와 큐티는 그런 나에게 한잔의 포도주이다. 나의 영성은 술에서 깨듯 지속이지 못하다.
다윗은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고 견디려 하기 보다 하나님께 아뢰었어야 했다 하나님 내가 외롭습니다 외부의 적과 싸울 때 내가 약하다고 했던것처럼 내부의 나와 싸울 때 내가 외롭습니다 라고 해야 했다 내가 광야의 힘든 전쟁을 주님과 함께 치루어 승리하였어도 왕이 되었어도 주님 외롭고 힘이 들고 낙이 없습니다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이 삶을 살아내는 것이 힘이 듭니다 주님을 알고 사랑하면 견딜 수 있겠습니까?
담임목사님처럼 주님을 아는것도 묵상함도 부족하고 주님을 사랑함도 지속적이지 못한데 내 욕심은 품으려 하지 않아도 새롭게 샘솟으니 이런 악한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내가 어릴 적엔 고아아닌 고아처럼 성인이 되어서는 과부 아닌 과부처럼 이땅에서 홀로 독처하며 사는것이 힘이 듭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내 악함을 보게 하신 주님 이 죄를 용서하시고 저의 이 악을 고쳐주세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물리적 공간과 시간의 환경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무관심한 이 악을 고쳐주옵소서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