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하는 나의 욕심, 미혹받는 나의 욕심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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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4.29
단순한 육체노동을 통하여
사람을 상대로 마음의 악함과
음란함이 발동할 일이 별 없는 요즘
지금 이 시간까지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봅니다.
미 취학아동 시절로 부터
학창시절 또한 대학 진학을 놓고도
졸업 후 취업과 사교모임과
결혼과 사회생활과
교회 생활의 여러 모양조차도
항상 채워지지 않는
육체의 소욕으로 인하여
잘못된 판단과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저의 욕심의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 에
저 자신이 속해 있었었다는 것입니다.
문자적인 적용의 육체적 임하심을
부인했다함이 아니라
신앙(믿고 앙모하는)의 모습이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였다는 것입니다.
저가 빠졌던 가장 무서운 미혹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는 말씀에
깊이 미혹됨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실지라도
돌로 빵을 만드는 것,
말씀을 시험하여 육체의 한계를 무시하는 것,
천한 만국과 그 영광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을 피하셨는데
육신의 정욕을 만족케 하고자 힘쓰며
안목의 정욕을 채우고자 애쓰며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간절함으로 기도했던
지난날들을 생각해봅니다.
신명기 28장의 순종에 따른 복,
말라기 3장의 십일조의 복 등
모든 열심 있는 신앙의 결과로
복을 강조하고 있다면
이제는 마음으로 부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심지어 거룩을 강조하지만
그 거룩함의 결과로
이 세상에서 복을 받게 됨을 내비치고 있다면
이 또한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물론 믿음생활가운데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복을 허락하심도 있겠지만
이 또한 역할을 위한 부이지
개인적인 누림의 권리는 아니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과부의 두렙돈을 강조하지만
믿음과 관계없이 더 많은 헌금을 유도하고
거지 나사로를 말하지만
날마다 연회를 베푸는 부자의 삶을 동경하는
이중적인 신앙의 모습을
지겹게 행해왔었고 또한 보았습니다.
이 모든 오류를 행함도
저의 욕심에 근거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젊은 부자 관원처럼
물질의 복도 원했고 또한 영생의 능력도 원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겸할 수 없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물질은 따라오는 것이지
좇아 가야할 것이 아님을 조금씩 깨달아 갑니다.
물질은 필요에 따라 주시는 것이지
욕심으로 구하여야 할 것이 아님을 알아갑니다.
욕심 때문에 비참함을 느꼈고
욕심 때문에 비굴하였음을 인정합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야말로
비참을 벗어나고 비굴을 벗어나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이제야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표삼아
마음의 짐을 꾸리고 짐을 푸는
순종의 훈련을 받고 있나봅니다.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물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는 겸손함이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저의 연약함으로 오는
모든 욕심의 미혹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