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30 시편79:1-13 제목: 전학
■ 성경구절: 우리는 이웃에게 비방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나이다(시편79:4)
■ 묵상하기
○ 오늘 묵상간증에 잦은 이사와 해외 유학으로 학교를 11번 옮겨 다니면서 늘 불안과 긴장, 두려움 속에서 살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홀로 살아남기 위해 괜찮은 척 가면을 쓰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위장한 채 지냈다고 한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가족에게도 바로 말하지 않고 숨겼다고 했으며, 홀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며 스스로를 조롱과 수치 가운데 버려두었다고 했다.
○ 딸들의 전학을 세어보았다. 큰딸이 9번, 둘째 딸이 12번이다. 그간 딸들이 어떤 불안과 긴장, 두려움을 겪었을까? 큰 딸은 비교적 씩씩했기 때문에 내색하지 않아 몰랐고, 둘째는 대학원 유학까지 마치고 온 후에 그간 공부하느라고 힘들었기에 취업을 보류하고 집에서 잠시 쉬고 싶다고 했을 때는 성공에 대한 꿈이 약하다고 안타까워만 했을 뿐이었다.
○ 더 애통한 것은, 딸들이 전학을 자주 하게 된 데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딸들의 전학에 대해 나의 악을 못보았다는 것이다. 만일 죄의식이 있었다면 다른 곳에 이동하는 것을 줄일 수도 있었다. 자청해서 지방 근무를 했고, 해외 유학과 근무 기회를 얻기위해서 치열한 경쟁도 했다. 성공 가치관, 돈이 우위를 차지하는 합리성이었다.
○ 나의 전학 케이스를 되돌아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큰 도시 대전으로 먼저 진츨하신 부모님을 여름 방학 중에 찾았다가 그길로 대전의 초등학교에 전학을 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다가 충청도 말로 바꾸느라 고통이 있었다. 첫 받아쓰기에 선생님 말이 들리지 않아 백지를 냈다가 조롱거리가 됐다. 농사를 돕느라 목덜미에 남아있던 까만 피부는 아무리 씻어도 그대로였다. 다행히 6학년에 올라서 공부가 정상 궤도에 오르고 대전 시내에서 가장 우수한 중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셋방 사는 처지였지만 집주인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 되었다.
○ 나는 지금까지 딸들이 잦은 전학으로 어려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심 섭섭했다. 정신적인 취약함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영어도 서툰 상태에서 영국의 학교에 남겨놓고 돌아설 때는 마음이 아팠던 기억은 있었다. 교실 창문 넘어 잠시 보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안타깝기는 했다. 그렇지만 내가 못했던 영어만 배우면 모든 것이 해결될 일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순간 딸들이 받았을 불안과 수치와 조롱과 두려움은 생각하지 않았다. 둘째를 미지의 캐나다로 유학을 보내면서 돈을 아낀다고 집에 있는 큰 컴퓨터를 들고 가라고 했던 것은 비정함의 절정이었다.
○ 이러한 딸들이 외부 전쟁을 치르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나의 음주로 인한 아내와 나 사이에 전개되는 24시간 전쟁에 다시 휘말리게 만들었다. 이것이 딸들의 일상생활 패턴이었다.
○ 이 딸들을 우리들공동체가 살려내고 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이라면 광야의 생활이라도 감사할 일이라는 말씀을 들으면서 가고 있다.
【오늘 보석글: 나에게 감사가 없다면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감사를 모르면 편안한 환경이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 가치관의 말씀이 있기에 죄인인 나도 살아날 공간이 있는 공동체이다.
○ 내가 딸들을 구원시키기 위해 악한 역할을 자초할 만큼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악하기만 한 아버지였지만 지혜로운 딸들이 아버지의 악행의 기간을 훈련의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아직 대학에 재학 중인 셋째는 지금까지 초등학교 때 3번 옮긴 것 이외에는 별로 옮기지 않았다. 이 딸의 구원이 약간 더딘 면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지금 유치부에 봉사를 하면서 공동체에 익숙해지고 있다.
■ 생활에 적용하기:
1. 온 가족이 같은 말씀을 듣고 가는 공동체에서 가족이 나의 악을 고발할 때 수치와 조롱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2. 수년전에 선언한 금주의 서약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