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두모의 기도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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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4.14
2009-04-14(화) 요한복음 20:24-31 ‘디두모의 기도’
성경에 나오는 사람에 대한 소개를 보면
‘누구의 아들 누구’ 또는 ‘어느 지방의 누구’ 이런 식이지만
도마에게는 ‘디두모’라는 헬라어 이름이 앞에 붙는 것을 보는데
문제는 이 말의 뜻이 별로 좋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디두모’가 갖고 있는 ‘둘의’ ‘이중적인’이라는 뜻대로
도마에게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나사로를 고치러 유대로 다시 가자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하던 도마에게서
좀 모자란, 충동적 소 영웅주의자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는데
오늘 본문의 첫 절,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처음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말씀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도마의 모습은
발 빠른 기회주의자의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시아라 믿었던 지도자의 죽음에 실망하여
다른 살 길을 찾느라 바빴거나, 유대인의 핍박을 피해
혼자 숨어 있었던 둘 중의 하나 또는 두 가지 다...
삼겹줄의 공동체보다 혼자 있는 게 더 안전하고
혼자 살 길을 찾는 게 더 현명한 길이라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의 공동체에 찾아오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고, 그 결과
다른 제자들을 통해 들은 주님의 부활 소식을
즉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겁니다.
25 년 허송세월을 끝내게 해주신
우리들 공동체와의 만남 이후에도
2 년 반의 뜸들임의 시간이 있었기에
공동체와 늘 함께 하지 못햇던 도마에게서 내 모습을 보며
주신 말씀을 통해 공동체의 소중함을 교훈으로 받게 되고
그 교훈이 더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음을 느낍니다.
수많은 공동체에 속하여 열심을 다하며 살았지만
내 기대대로 세속적인 내 욕심을 충족시켜줄
어떤 공동체도 세상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초청으로 우리들 공동체에 몸담고도
기복의 믿음과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여
교회와 세상을 오가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뜸을 들이셨고
어쩌면 지금의 삶도 그 시간의 연장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에게도, 도마에게 베푸신 긍휼히 여겨주심의 은혜가 임하여
의심하는 내 마음을 잠재우시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의 고백을
날마다 입으로 시인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아직 도마의 수준이지만
공동체와 늘 함께 하지 못하는 사정을 긍휼히 여기시어
의심할 때마다 내 마음을 꿰뚤고 계심을 알게 하시니
주여, 아직도 도마의 모습을 버리지 못한
디두모의 기도를 들으사
떠나온 세상에 대한 미련을 도말해주시고
오직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에서
주님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말씀으로 양육 받으며
오직 말씀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중에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