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들이 지고 푸른 잎들이 돋아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고난과 심판, 징계를 통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시간들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와 징계를 철저히 구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방인들에게 끌려갔다 구원을 받아 돌아왔을지라도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징계를 내리시고 책임을 물으신다 하십니다.
저에게도 남아있는 징계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인정을 많이 받기 시작했던 저는, 저를 인정해주지 않는 또래 집단 사이로 들어가는 것을 참 어려워했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친구로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확연히 달라 친구는 말실수를 할 수도, 다툴 수도 있는데 저는 그것을 용납하는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인정 받고 이쁨 받는 모습이 친구들 사이에서는 재수없는 모습처럼 비춰질 수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제게 타고난 성품으로 더 온화한 사람이 되려 했습니다.
그랬기에 자연스레 친구들로부터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년부에 올라와 처음 #039또래 집단#039에 속하게 되었을 때, 저는 말하자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의 무리 속에 섞인 셈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다른 친구들이 당연하다 여기는 부분에 대해 어려워하는 것이 많았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말에 상처 받은 것도 참 많았습니다.
꼭 저를 향해 한 말이 아니더라도 다른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제가 공격 받는 것 같은 대화 내용을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상처를 받았던 것은 #039자기 의가 충만한 자#039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청년부에 갓 올라온 새내기 친구들이 술, 음란, 불신교제 등의 문제들로 어려워할 때 #039그렇게 참는 것이 너의 의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확 죄를 짓고 무너져버려라. 그래야 교회로 돌아온다.#039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곤 했습니다.
그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죄를 짓고 자랑하는 청년들 틈에서 저는 무한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나눔을 함부로 꺼내기가 너무나도 두려웠습니다.
똑같이 #039술을 안 먹는 문제 때문에 힘들어요.#039라고 말해도 힘든 부분과 감정, 생각이 다 다른데 제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보며 #039쟤는 교만하고 자기 의로 꽉 차서 저런 나눔을 하는 거야. 새내기 때는 무조건 방황하고 힘들고 어려워하고 교회 다 떠나고 싶어해야 정상이지.#039라는 고정관념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나눔을 꺼낼 때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039너는 네 죄가 보이니? 너는 교만해. 너는 너 의가 많아. 너는 순종이 안 돼. 너는 정상이 아니야. 너는 너 자신에 대해서 잘 몰라. 너는 공동체 속으로 들어와야만 해.#039라며 저를 가르치기에 바빴습니다.
저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봅니다. 동성애에 대해 #039찬성#039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마녀사냥을 당하듯 물어뜯기고, 철저히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이기고 또 이겨야만 승리하는 세상의 가치관들을 날마다 목격합니다. 그 가치관들을 날마다 접하기에 그 가치관에 물들지 않기 위해 온 마음과 정신을 다해 세상과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새내기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전쟁이 너무 힘겨워마음의 힘을 얻고자 교회 모임에 나갔는데, 사람들은 저의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며 자신들의 기준과 시선으로 저를 평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럴 때면 가슴 깊숙한 곳부터 #039그건 다 알아요. 제가 왜 모르겠어요. 전 정답을 다 알아요. 그런데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살고 싶어요. 살고 싶은 자에게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가 만난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야기에요?#039라는 말이 올라왔습니다. 가끔 대하기가 너무 힘든 사람을 만날 때면 #039그런데 그렇게 입으로는 말을 잘하는 당신은 예배 시간에 하루도 빠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졸잖아요. 삶에서 살아내는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저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요?#039라고 말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질서는 사람이 아닌 역할에 순종해야한다는 말씀에 순종하고자 그 모든 말들을 간신히 참아내고 예배의 자리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목원과 나이가 어린 자, 교제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자, 청년공동체 내에서 가장 연약한 자의 모습을 하고 있던 제가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사랑 없는 처방과 공격을 피할 수 있던 방법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 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싸워 이길 힘을 얻고 싶어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오히려 제 마음에서는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눈치를 살피는 시간이 길어지고, 하나님 앞에 외로움과 두려움의 문제로 울며 기도를 해도 제 안에서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바벨론을 섬기려 했습니다.
저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교회 공동체 사람들의 말이 100% 옳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그 분들이 하는 말 중에는 저에게 필요한 말이 있고 필요하지 않은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하며 해석 받는 인생이 너무나 괴로웠고, #039나도 청년들이 하는 것 그대로 따라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좀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039라는 교만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랬기에 어느 순간부터 저는 저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해오시고 은혜로 채워주시던 저의 삶이 아닌, 우리들교회 청년부 공동체에서 욕을 먹지 않기 위한 가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SNS에도 제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닌,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만한 글들을 올렸고, 사람들이 저를 재수없는 사람이라 욕할까봐 온라인 게임이나 보드 게임을 할 때도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일부러 못하게 하곤 했습니다. 말투와 단어도 제것이 아닌 요즘 20~30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일부러 골라쓰곤 했습니다. 긴 글을 읽는 것을 그닥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많기에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꾹꾹 눌러담고 압축해서 짧게 적기도 했습니다.공부를 즐거워하는 저의 모습을 보이면 저를 교만하다며혐오할까봐 대화 중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마음이 위축되곤 했습니다. 신앙대로 살아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저의 모습을 보면 제 의가 충만하다며 공격할까봐 복음대로 사는 것을 반쯤 포기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039내가 노력한다면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사람들과 같이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039라고 생각했던 저의 교만이 있었습니다.
그 교만함을 품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끊임없이 #039너에게 이 말을 했던 그 사람은 이런 고난이 있고 이런 사람이지 않니? 그 순간 그 맥락상에서 너에게 이 말을 할 수밖에 없던 사람이야. 그러니 그 사람이 너에게 상처준 것을 용서하고 앞으로 너의 나눔을 당당하게해.#039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 틈에서 받은 상처를 오기로 삼아 #039너가 나에게 그렇게 상처 주고 나를 비웃었지? 이젠 내가 사람들을 모아 너희들에게 다 복수할 때야.#039라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갈 때에 제 삶에 듣도 보도 못한 거대한 고난들이 찾아왔습니다.
타인의 삶을 살려 했기에 제 감정과 마음은 점점 더 무너져갔습니다.
학교에선 3년간 믿고 따랐던 교수님에게 하루만에 큰 소리를 듣고 버려지는 것 같은 일도 찾아왔습니다.
가족들도 해결되지 않는 저의 문제를 보며 괴로워했습니다.
사람을 얻고 싶어 교만하게 살아왔는데, 사람과 일, 공부, 가족을 치시니그제야 하나님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삶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은 그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작년 송구영신 예배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아주 낮고 따스한 음성이 제 마음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039혁중아, 사람들의 가르침과 훈계를 듣지 말고, 사람들의 말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 네 안에는 내가 가르쳐준 수많은 말씀이 있단다. 내가 너에게 말해준 수많은 보석들이 있단다. 은혜와 위로는 나한테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살려내.#039
#039하나님, 저 일어설 수 있어요? 저 지금 완전히 엉망이 됐어요.#039
#039혁중아, 네가 해온 일들이 무엇에 순종하기 위해 시작된 거니? 세상의 가르침이니? 아니란다. 말씀에 순종하고자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진게 아니니? 그렇다면 내가 너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너의 상처를 고치지 않을 이유가 대체 무엇이 있겠니?#039
아주 짧은 대화였고, 당시에는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 지금, 그 말이 진실로 맞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저의 약점은 관계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책이 제 친구였고, 예배당이 제 놀이터였습니다. 그랬기에너무 일찍 어른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또래 사이로 들어갈 수가 없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사적인 관계에 대한 기준치가 너무 높습니다. 그렇기에 늘 외로움을 짊어지고 삽니다. 제가 날마다 은혜를 받고 살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지게 해주신 외로움의 십자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이 지게 해주신 이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제게 말로 상처를 준 자들보다, 죄를 묵인하고 올바른 것을 보이지 않은 자들보다, 사랑 없는 처방을 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은 자들보다 더 악한 자는 바로 저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이 십자가를 버리고 도망갈 수 있을지 궁리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진정 죄인인 이유입니다.
제겐 남아있는 징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쫓아다니다 무너진 저의 삶이 아직 회복 중에 있습니다. 아직도 제가 살았던 타인의 삶이 제 삶의 일부분으로 남아있어 저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SNS에 글을 쓸 때도, #039그런 글 쓰면 안 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정신 차려. 그 글을 쓰면 그 부분에선 이 사람이 너를 욕하고, 저 부분에서는 저 사람이 너를 욕할 거야. 요 부분에서는 이 사람이 너보고 교만하다며 한 소리할 거야.#039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확 스쳐지나가고, 양교 숙제를 하거나 교회에서 나눔을 할 때도 #039야, 제발 그런 나눔 좀 하지마. 너 알잖아.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딴지를 걸 거고, 그리고 그 딴지 건 거에 대해서 너는 이렇게 반응하겠지? 그러면 과정이 딱 나와. 넌 남의 말 안 듣고, 교만하고, 죄 못 보고, 순종 안 되고. 사람들은 널 그렇게밖에 안 볼 거야. 사람들은 너랑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너에게 가르칠 것만 머릿속에 가득차있거든. 넌 또 공격당하고, 넌 또 버림 받을 거야.#039라는 생각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떱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상황이 생길 때,사람들이 제가 만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039내가 또 이상하게 보였을 거야. 내가 또 교만하게 보였겠지. 저 사람들은 내가 지금 아무리 뭐라고 말해도 나를 가르치려고만 할 거야. 정작 자기들이 교만하다는 생각은 왜 안하지? 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나쁜 놈이 될 거야. 나는 또 오해를 받고 사람들에게 버려지겠지.#039라며 마음 문을 쾅 닫아버립니다. 그럴 때마다 제 속에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썩은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처음에는 주체할 수 없는 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다가, 조금 회복되고 나서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다가, 이제는 사람들에 대한 짜증과 당당하지 못한 저에 대한 속상함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겪을 때면 일상이 잠시 멈추게 됩니다. 그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기도하고 회복받기 위해 제가 해야할 일들이 잠시 정체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않으면 그 감정들이 해결이 되지 않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이것이 저에게 남아있는 진정한 징계입니다.
예레미야는 #039나를 잡아 죽여~ 그런데 내 속에 하나님은 진짜시다~#039라고 말합니다. 제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진짜시기에, 예레미야처럼 당당하게 말하지 않는 것 또한 저의 악입니다. 이젠 움추러들어있던 연약한 자에서, 세상이 저에게 돌을 던져도 #039날 잡아 죽여라~#039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믿음의 청년으로 거듭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