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력하여 이루실 선한 일의 복선 깔기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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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4.11
2009-04-11(토) 요한복음 19:31-42
4월 말 장인어른 소천 후 드리는
첫 추도 예배에 관해 아내와 대화하던 중
예배 인도를 내게 맡기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초우, 재우, 삼우의 예배도 인도했으니
첫 추도 예배도 사위가 맡아야 한다고...
그런데 그날을 기다리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동네 교회의 장로 중 한 사람,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말씀을 사모하여 큐티에 힘쓰던 중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를 TV를 통해 만난 후
그 교회 성도라는 이유만으로 자기 친구를 부러워한 나머지
친구를 통해 실전 큐티를 배우기를 원하여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선친의 추도식을 기다리는 여자...
그 일도 내게 맡김에
적잖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인데
요 며칠 이곳 게시판에서 한 형제가 제기한 문제로
부담을 넘어 혼란스러움까지 밀려왔습니다.
내 큐티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것인가?
내 간증에 무용담은 섞이지 않았을까?
나도 가진 게 없는데 누구에게 나눠준단 말인가?
배운 것은 분명히 있지만 제대로 전할 수 있을까...
그 형제의 의견을
공동체의 간증과 큐티에 대한 단순한 이견(異見)으로
가볍게 보아 넘길 수도 있겠지만
내 큐티 나눔과 지금까지 해 온 내 간증을 곱씹어보면
그 형제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그 혼란스러움을 잠재울 수 있는
적용의 단서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주도면밀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일도 허투루 하시는 분이 아니심에
오늘의 혼란스러움을 야기시킨 그 형제의 주장에도
새겨듣는 사람과 힘써 말하는 사람 모두를 향해
작정해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는 위안을 얻게 됩니다.
그 주도면밀하심을 니고데모를 통해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일찌기, 거듭남의 비밀을 말씀하시며
그 유명한 3장 16절의 말씀으로 그를 양육하시지만
비천한 사마리아 여인과 달리
못 알아들어 그냥 가버린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인데
그가 예수님의 장례식에 귀한 향품을 들고 나타납니다.
백 근쯤이나 되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를 통해 귀한 향품을 받으시며
그로 하여금 장례식의 전 과정을 지켜보게 하심은
후에, 부활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 원형을 유지하는 세마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부자이기 때문에 아리마대 요셉을 쓰셨다면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그 입의 무게 때문에
니고데모를 쓰셨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근일의 미묘하게 보이지만
최소한 나는 새겨들어야 할
큐티와 간증에 대한 그 형제의 문제 제기도
주도면밀하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
훗날에, 합력하여 이루실 선한 일의 복선 깔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