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회개의 상처 / 지체님께
작성자명 [주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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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4.10
지체님께
먼저 이 글을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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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 C.S. 루이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 사도신경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고 믿지만
우리에게 죄지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용서를 놓고 자주 실수를 범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저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실제로는 제가 그분께 전혀 다른 것을 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용서가 아니라 양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와 양해는 전혀 다릅니다.
용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 너는 이런 일을 했다. 하지만 네 사과를 받아들인다.
나는 이 일에 대해 네게 앙심을 품지 않을 것이고
우리 사이의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양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어쩔 수 없었다는 것과 본심이 아니었다는 걸 알겟다.
정말 네 잘못이 아니었구나.”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고 하는 일이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해명을 받아주시기를 구하는 일 일때가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대부분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의 핑계,
‘정상 참작을 할만한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알리느라 바쁜 나머지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남은 부분 말입니다.
어떤 행동에 있어 핑계할 수 없는 부분,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부분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린다면,
실제로는 우리 자신의 핑계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자신이 회개했고 용서받았다고 상상하며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엉터리 핑계앞에서도 자신에게 너무나 쉽사리 만족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문제에는
하나님의 죄용서와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같은 부분은 용서가 양해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와 양해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듯합니다.
자신들을 속이거나 괴롭힌 누군가를 용서하라는 말을 들으면
그들은 속임수나 괴롭힘 자체가 없었다고 설득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다면 용서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그 사람은 가장 중요한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정확히 바로 그것을 용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다음 번 약속을 반드시 믿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마음에 남아있는 원한과
상대에게 모욕과 상처를 주거나 앙갚음하고 싶은 욕망을 없애 버리기 위해
정말 분투해야 합니다.)
이 상황과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상황과의 차이점은 이렇습니다.
우리 자신의 경우, 우리는 스스로의 구실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구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죄에 대해 늘어놓는 구실은 실제로 내 생각만큼 휼륭하지 않다고 봐도
(확실한 정도는 아니라도) 무방할 것입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의 구실들은 내 생각보다 더 낫다고 봐도
(확실한 정도는 아니라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의 잘못이 우리 생각만큼 크지 않음을 보여 주는 모든 것에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죄가 전적으로 철저하게 그의 잘못이라 해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가 저지른 죄의 99퍼센트가 정말 타당한 구실들로 설명될 수 있다 해도
용서는 남은 1퍼센트에서 시작됩니다.
정말로 양해할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는 일을 양해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자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정함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용서하셧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어렵습니다.
한번의 큰 모욕을 용서하는 건 어쩌면 그리 어렵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는 일은 다릅니다.
들볶아 대는 시어머니, 윽박지르는 남편,
바가지 긁는 아내, 이기적인 딸, 거짓말쟁이 아들을 계속해서 용서하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방법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기억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매일 밤 때마다 진심으로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를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외가 있다는 암시는 전혀 없으며, 하나님은 결코 빈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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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로가 용서할 때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인류의 죄를 지셨습니다.
주께서 용서하신 것을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십자가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일 후면 부활의 아침이 밝아올 것입니다.
충고는 감사히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