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즐겨들었던 CCM 중에, #039겸손의 왕#039이라는 제목의 찬양이 있습니다.#039왕, 겸손의 왕. 평범한 목수의 아들. 주, 종으로 오신 죄인을 섬기신 창조주~#039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찬송이었는데, 그 찬송을 들을 때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저는 겸손에 대해 오해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해내도 사람들 앞에서 #039아이, 괜찮아요. 제가 뭘 잘했다고요.#039라고 말하는 것만이 겸손인줄 알았습니다.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겸손이 맞았지만, 저는 #039나는 한 게 없어요. 이건 내가 무언갈 잘 해서 이룬게 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니 한 거에요. 상황이나 환경이 제가 이걸 하도록 만들어줬나보죠, 뭐.#039라는 염세에가까운 생각이 겸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중학생 때 학교에서 전교권 성적을 맞아도, 선생님들께 예의 바르다 칭찬을 받고 여러가지 상을 수상할 때도 엄청 기쁘지가 않았습니다. 사실, 기쁜 마음이 생기는 것을 제가 애써 억눌렀습니다. 어떤 일을해도 염세에 찌들어 있어야 겸손이라 착각하며 지냈습니다.
겸손에 대해 오해하게 된 데에는 저의 삶이 있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까지 공부와 관련된 일에서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비싼 학원을 다녀서가 아니고, 어느 곳을 가든지 저는그 과목과 대상에 대한 선행학습이 성취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 또래 친구들보다 월등하게 잘해내는 것이 있었습니다. 늘 어느 곳에 가든지 제가 조금만 노력을 들이면 쉽게 선두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게 다가와 #039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할 수 있어?#039라고 묻곤 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친구들이 저를 볼 때, #039쟤는 학교에서는 수업을 잘 듣고 집에 가서는 하루 종일 공부할 거야.#039, #039자기만의 공부 방법이 있을 거야.#039라는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지속되다보니 괴로웠습니다. 청소년부에서 양육 받으며 #039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의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라!#039라는 말씀을 정말 사모했기에, #039나 공부 많이 안 해. 학교 수업만 잘 듣고 시험 기간에 문제 조금 풀어보는게 다야.#039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친구들의 꿈을 짓밟는 것만 같았습니다.그랬기에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은 제게 늘강박처럼 깔려있었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교만해진다면 그동안 살아온 삶이 모두 헛된 것으로 바뀔 것만 같았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었을 때 보통 기쁜 마음이 올라오고 교만한 생각이 들었기에 저는 기쁜 마음이 올라오는 것 자체를 스스로 막았습니다.
이 습관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지속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것을 참 두려워하고 #039아이, 괜찮아요. 제가 뭘 잘했다고요.#039라는 말로 일관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와서 #039그 때 그 모습이 참 감명 깊었어.#039라고 말을 해주어도 감사하다는 말 대신,#039에이, 할 일이니까 한 거예요.#039라며 저의 염세를 놓지 않았습니다. 젊은 청년은 삶에 대한 활력과 기쁨으로 가득 차야 하는데, 저는 염세와 회의로 가득찬 시간들을보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주위에서 엄마께 제가 영특한 기질이 있으니 검사를 받아보라 권유해주셨다 합니다. 당시 엄마께서는 제가 무언가를 빨리 배우기는 했지만 집에서 눈치가 빠르지 않고 어리버리한 모습이 있었기에 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으셨다고 합니다. 제 누나가 워낙 시키는 일마다 잘 버티고 잘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여러 번 그런 이야기를 들어 저를 데리고 한 학원에 지능 검사를 받으러 가셨습니다. 당시 진행한 검사는 웩슬러 아동 지능 검사였는데, 148~155의 수치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저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039와, 나 머리 좋은 가봐!#039하고 신나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그 때의 지능 검사가 궁금해져서 찾아보았는데, 제가 치렀던 검사는 160점이 만점인 척도였고, 흔히 사용하는 멘사용 검사로 환산하면 최대 수치였던 155는 188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중학생 때부터 취해야했던 태도는 염세가 아닌, 하나님을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039천재#039라 불렸던 이들 중 거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에게 무한한 열등감과 숙제를 던져주고 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머리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론을 만들고, 악과 음란에 취해 삽니다. 바람을 피고, 이혼을 하고,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039그는 천재였기에 외로웠다#039며 미화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던 천재들의 삶은 사람들에게 #039와, 저 사람은 태생 자체가 달랐구나. 와, 저 사람은 저런 환경 속에서 저렇게 좋은 교육을 받고 머리가 좋게 컸구나!#039라는 열등감과 비교 의식만을 던져줍니다. 제가 살아야 했던 삶은 그에 대적하는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하나님께서 길러내신 천재는 학교에 안 나오는 친구를 위해 수업을 빠지면서라도 온 동네 피시방을 뒤지러 다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해 공격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그 속에 있는 사단을 마주하는 자여야 했습니다. 자신의 이성과 운을 믿지 않고 항상 그 이상의 영역에 계신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걸어가는 삶을 사는 자여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이 어려워 찾아올 때 제 기준으로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하나하나 알려주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자신이 잘났다는 생각에 파묻혀 사람들 속에서 도도하게 걸어다니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순간이 더 많아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 자신도 제가 누구인지 몰라 생각 속에 갇혀 방황하는 시간을 겪는 사람이어야만 했습니다. 수많은 생각을 통해 깨달은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려 할 때 재수없고 교만하다는 사랑 없는 처방을 들었음에도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교회에 붙어있는 청년이야 했습니다.교회 식구들 가운데 학벌이 좋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열등감이 생긴 자가 있다면 그 열등감을짊어질 책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아님에도 그들의 마음에 같이 아파하고 같이 울어주고 대신 회개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머리 좋은 자들이 잘못해온 수많은 일들에 대해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교만합니다. 제가 교만한 까닭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재능에 대해 아직도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숫자를 너무 좋아해서 188이라는 숫자로도 그 재능의 크기를 보여주셨음에도 하나님 앞에서 끊임 없는 경우의 수를 논하며 불순종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낼까봐이런 나눔을 쉽게 하지 못하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만드셨는데 그 창조 질서에 순종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일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그냥 사람이었다면 #039하나님, 도대체 이 나귀 새끼를 타고 쪽팔려서 어떻게 들어가요?#039라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지능을 주신 것은 너무나 감사하고 평안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 저의 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고, 저만의 공상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서 늘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사람들 앞에서 저의 본 모습이 드러날 때 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하는데, 저의 이런 약점이 너무 부끄러워서 숨어버립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그 부끄러운 나귀 새끼, 사람들 앞에서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저의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 예수님을 닮은 삶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적용하기 위해 저의 생각 속에서 그만 놀고 사람들과 노는 시간을 조금씩 가져보려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서는 상대가 저의 약점을 알아차리고 이상하게 여겨 저를 떠날까 두려워 하는 일을 멈추고자 합니다. 지난 대학 생활 4년간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나도 많기에,제겐 너무나 어려운 적용입니다. 방에서 하루종일 책 보는 일이 백 배, 천 배, 만 배 쉽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람들 속으로 나아가야만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해결되어 제가 진정 하고 싶은일들을 할 수 있는 상태로회복될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술과 담배를 끊는 적용이, 누군가에게는 힘든 자녀의 화를 받아내는 것이 너무나 힘든 적용인 것처럼 저에겐 죽음을 각오한 순종과 적용이라 생각합니다....... 생각이 나신다면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