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한시적으로 살 수 밖에 없으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떠나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떠나고 버리는 광야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20세 때 집을 떠나서 취업을 했는데 그 후로는 떠나기 전의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아내와 결혼하여 새가정을 꾸린 후로는 형제와 자매와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지기시작했다.부모님도 의무감은 있었으나 이미형님이 모시는 분들이 되었다. 명절 때 찾아가서 아주 잠시 뵙고 오면 되었다.
큰딸이 시집을 가니 큰딸은 사위와 손녀손자가 한가족이 되었다. 곧 둘째와 세째도 그 길을 갈 것이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나에게 전토는 모두 그랜드캐년처럼 남들의 소유이다.나는 필요할 때 찾아가면 된다.21세기의 전토 개념으로 생각해도 내세울 마땅한 재산과 재능이없다.
2003년 어머니가 쓰러지시자 큰형님은 시골 외딴 요양시설로 보내셨다. 요양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때라서 시설이 열악했고, 나는 불효한다고 큰형을 정죄했다. 2005년 해외근무가 끝나자마자 어머니를 내가 모시겠다고 선언하고 작은 아파트로모셔왔다. 1년쯤 모시니 나의 인내에 한계가 왔다. 밤잠을 못주무시는 어머니는 수시로 부르셨다. 근무에 지장이 있었다. 마침 요양제도 시범사업이 수원에 시작되었다. 아파트 뒷편에 있는 좀 괜찮은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냥 집에 있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바라는 것을 묵살하고 요양병원에 보냈다. 처음에는 자주 들렸으나 시간이 갈수록1주일에 한번씩 들리는 것도 일이 되었다. 어머니를 버린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께 전도는 했다. 초하루보름, 한달에 두번은반드시 칠성제를 지내시던 어머니였는데, 1983년 내가 미국에 장기 연수를 떠나면서 출국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작별인사로 교회다니시라고 당부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왔는데어머니는 그 날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세째 아들이 믿는 종교를 믿는 것이 장기 출타하는 아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교회를 잘 모르고 음주음란이 삶의 목적이던 시절이었는데, 사전에 전혀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출국 직전에 교회다니시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2010년 25년 넘게 교회를 다니신 어머니가 소천하는 날 하나님은 나에게임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셨다.나의 찬송과 기도로 떠나보낼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옆에 있던 아내는 나의 큰 음성의 기도에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그 기도는 내가 공개적으로 한 첫기도였다.
오늘 말씀은 나에게 어머니를 버렸다는 정죄감을 조금 순화시켜 주신다.
이 땅의 삶은 떠나고 버리는 결정을 계속해야 하는연속선 위에 있다. 나는 지금까지는 그 순간순간의 결정을사리사욕을 기준으로 결정해 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예수님 이름이 기준이 되도록 해야 겠다. 순간순간의 결정이 천국을 향하는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이름으로 버리고 떠나는 결정을 해야겠다. 특히 부모나 형제나 자녀를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힘든 결정도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039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039
적용: 앞뒤 순서는 맞지 않지만, 늦은 나이인 지금부터라도 예수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가 되기 위해 매 순간의 결정을 함에 있어 주의 공의와 판단력으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