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청년부에 소속된 김혁중입니다.
앞으로 은혜받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큐티 나눔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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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 앞서 말씀드리면, 저는 우리들교회에서 자라난 #039우리들 키즈#039 중 한 명 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소년부, 중등부, 고등부를 거쳐 청년부까지 오게 되었고, 지금은 고등부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 나눔을 올리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청년부 내에서 목자도 부목자도 아닌 목원이기에 제가 적을 나눔이 이상하게 보일까봐 참 많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제가 하는 나눔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제가 받은 은혜를 쉽사리 나누지 못했습니다. 제 간증을 하려다가도 자꾸만 다른 사람들을염려하여 쉽게 말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자꾸만 저의 간증을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 꺼내어놓을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나눔을 하고 나니 용기가 조금 생겨 조심스럽게 나눔을 올립니다. 제가 나누고 싶은 내용은 담임 목사님께서 매 주 강대상에서 선포하시는 말씀과 우리들교회가 감당하는 사역이 빚지고 환란당하고 원통한 자들을 치료하고 위로하고 살려내는 것 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를 살아갈 믿음의 일꾼을 길러내고 하나님의 비전을 가진 청년들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아주 어렸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던 교회에서 성가대 연습을 하다 저도 모르는 사이 엉엉 울어버린 일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우리들교회에 온 후로도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교회에서 에쁨 받는 학생으로 자랐습니다. 제게 타고난 온유한 성품과 모범생 기질을 통해 교회의 방침을 지켰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들께서 인정해주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저는 #039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면 삶이 참 행복하구나!#039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삼일 반 간의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말씀을 통해 인도받아 입학했던 과학고등학교에서 미칠듯한 괴로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최소 5년 이상의 선행학습으로 완전 무장하고 신은 없고 과학이 최고라 부르짖는학생들 틈에서 학교 수업에 충실히 공부하고 교회에서 삶의 낙을 찾아온 저는 손 쓸 틈도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중학생 때 90점 이하로 떨어져본 적 없는 시험 점수가 20점, 30점대를 왔다갔다 거렸고 주위의 사람들은 예수님은 없다며 저를 비웃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친구들과 큰 문제 없이 지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그 누구와도 섞이지 못했습니다. 학교 내 다른 사람들은 쉽게 성공하는 것 같은 입시에서도 저는 10장의 원서를 쓰고 9번의 불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어두컴컴한 기숙사 방에서 #039나 같은 건 죽어야돼. 나 같은 건 이제 아무 것도 못해. 나는 쓰레기야.#039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잠드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고, 학교 수업이 끝나고는 자습실로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두려웠고, 자습이 끝나고 기숙사 방으로 들어가면 다음 날 아침이 오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제가 힘들어하니 가족들도 덩달아 힘들고 어려워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괴로웠던 것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교회에 와서 매 주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039하나님, 왜 이렇게 아플까요, 저를 건져주세요. 제게 죄가 있다면 그 죄를 알려주세요. 회개하게 해주세요.#039라고 말입니다. #039내 죄를 회개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출발#039이라는 말씀을 붙잡고 미친듯이 울부짖었습니다.고등학교 3학년 때는청소년부 예배, 주일 예배, 수요 예배를 드리며 울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예배를 드리고, 스스로 #039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내가 어떤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하지?#039라고 생각해보아도 마음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어느 고3 여름, 주일 말씀을 듣고 무언가에 홀린듯 자유 나눔에 써내려간 글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너무 답답해 두서 없이 쏟아놓은 그 나눔이 담임 목사님 주일 설교에 소개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뒤, 엄마께서 문득 던진 #039십대 답게 살아!#039라는 말이 제 마음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 뒤로 거짓말같이 우울이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 9번의 불합격 통지를 받는 아픔 끝에 명문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 모두들 축하한다고 해주었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참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대학교도 잘 가고 우울도 사라졌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응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의문은 불안함이 되었고, 그 불안함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대학교에 와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으며저는 다윗처럼 열다섯 광야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이번에는 학교를 대전에서 다녀 수요일 날 예배에 올 수도 없었습니다. 주일날 예배 시간이 되면 여전히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너무 아프다고, 도대체 내 삶이 언제까지 이렇게 아파야하냐고 하나님께 미친듯이 부르짖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던 청년들은 제가 교만해서 그런 것이라고 사랑 없는 처방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말씀대로 살고 싶었던 저는 교회 청년부 목장 내에서조차 위로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청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전화가 오거나 군대에서 자살하고 싶다는 연락이 올 때면 제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청년 공동체 내에서 했을 때에도 여전히 #039너는 어리니 아직 그런 것 하지 않아도 돼.#039, #039너는 너의 의가 세고 교만한 사람이야.#039와 같은 사랑 없는 처방을 듣게 되었습니다. 열 두 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처럼 저는 어디에도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저는 교회 공동체 내에서조차 버림 받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픔을 겪으며 저는 점점 무너져갔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청소년부 예배를 드리며 공부가 제 사명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었는데, 작년 초에는 책 한 줄조차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있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치고 글자를 들여다보면 머릿속에서 저에게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끊이질 않아 아무런 생각도, 집중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4년간 망가질대로 망가진 제게 문자 그대로 #039남은 것#039은 대학 졸업장이었습니다.
서울로 올라오던 작년 12월 말, 버스 안에서 하나님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기도했습니다. #039하나님, 이제 어쩌죠? 저는 이제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요. 사명이고 뭐고, 지금 제 꼴을 보세요. 전 할 수 있는게 정말 아무 것도 없어요. 이 상태로 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요.#039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039이제, 때가 되었어. 내가 너를 살릴 거야.#039라는 생각이 말입니다.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실 것이라는 말을 비웃었듯이, 저는 #039그래요? 한 번 해보세요.#039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이 저를 걱정할까봐 말을 하진 않았고, 저도 무언가 두려워 병원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저 스스로 생각하는 저는 완전히 망가져있었습니다. 아주 쉬운 책 한 줄 조차 읽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싫고 두려웠기에 끊임없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감정이 어디까지 망가졌는지는 몰라도 기쁘고 즐거운 감정을 느끼지 못한지 족히 세 달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 앞에 저의 상태를 드러내기가 너무 싫어 연기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저에게 사랑 없는 처방질을 해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랬기에 말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뭐든 괜찮다 말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송구영신 예배 때, #039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039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039질서에 순종해서 윗질서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마음에 새기란 뜻이잖아요!#039라고 떙깡을 피우고 있었는데, 버스 안에서 들려왔던 아주 부드럽고 나즈막한 목소리가 #039그거 말구. 사람들이 어떤 말을 어떻게 하고 사는지 관찰해보란 뜻이야.#039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 뒤로 매 주 주일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찾아와 가장 부드럽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전의 예배들은 슬프고 어려운 감정을 쏟아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어느 여름날에 나눔을 미친듯이 써내려가게 만들었던 그 은혜가지난 3개월 간 매 주 임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039혁중아,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야.#039 늘 그렇게 말씀하시며 예배 때마다 제가 살아온 삶의 기억을, 분노와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얼룩져있던 저의 기억을 하나하나 헤집어 꺼내기 시작하셨습니다.너무 아파서 생각도 하기 싫고 건드리기 조차 싫었던 그 기억을 다 털어내시고, 그 때 무슨 일이 있었고 그 때 제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이 했던 나눔들까지 기억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늘 그 끝은 #039네가 그 속에서 나를 선택했잖니. 사람들이 어떻게 보았건 간에 네가 나를 선택해서 아픈 거잖아. 그러니 내가 너를 살릴 거야.#039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맞았습니다. 저는 우리들교회에서 매 주 울려퍼지는 간증들을 들으며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 무엇인지 정확히 배워왔고, 그 선택을 하며 살고 싶어했습니다. 저보다 앞선 신앙의 선배님들이 겪은 수많은 고난이 간증이 되고, 그 간증을 매 주 들으며 사람을 살리는 선택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제가 공동체에 진 빚은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공동체에 대한 원망도 조금씩 씻겨져 나갔습니다. 매 주 울려퍼지는 말씀과 공동체의 사역이 저를 광야로 가게 하였고, 그 광야에서 지친 저를 회복시키는 것도 말씀과 공동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3월이 접어드는 지금, 저는 대학원 전공 수업을 들으며 낄낄거리며 즐거워합니다. 불과 3개월 전, 초등학생 때 읽었던 책 조차 제대로읽지 못했던 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를 회복시키시며 늘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가 갈 사명의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공부를 사명으로 받은 사람입니다. 과학고등학교 생활을 할 때는 화학 공부를 통해 그 사명을 이룰 줄 알았는데, 대학에 와서는 물리학과로 진학했습니다. 학부생 때는 실험물리를 하고 싶었는데, 대학원에 올라가는 지금 제가 품은 사명은 그것과 또 다릅니다. 저는 이 세상에 창세기 1장 1절, #039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039라는 말씀이 정말로 맞다는 사실을 보이고 싶습니다. 사단이 세상의 학자들을 통해 지금껏 만들어온, 하나님을 대적하는 물리 이론들을 그들이 만든 언어와 그들이 만든 논리로 부수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세기처럼 창조하셨다는 것을 밝혀내고 싶습니다. 혼돈 가운데에 빛이 있고, 궁창 아래의 물과 위의 물이 갈라지고, 물이 한 곳에 모여 땅이 드러나고... 세상이 꼼짝 못하도록 그들에게서 배운 논리 그대로 그들의 그릇된 지식을 부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리고 미성숙한 죄인이기에 이 사명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주일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찾아오시고, 사랑한다 말씀해주시고, 저를 살리고 회복시켜주실 예배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찬양을 드릴 때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담임 목사님이 강대상에 올라오실 때마다, 계시록 말씀이 다시 선포될 때마다, 적용이 울려퍼질 때마다, 봉헌하러 일어날 때마다, 새가족을 환영할 때마다, 축도를 마치고 예배당 밖을 나서는 순간마다 저를 사랑하고 불꽃 같은 두 눈으로 지켜보고 계신 여호와 하나님이 저를 기다리시는 예배를 사모함을 기다립니다. 이제 예배당은 제게 단순히 힘든 감정을 쏟는 곳이 아닌, 저를 가장 귀하다 말씀해주시고 저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참 좋다 말씀해주셨던 제 사모하는 주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이것이 지난 8년 간의 고난을 통해 제가 깨달은 사실입니다.빚지고 환란당하고 원통한 자들이 예수님이 필요한 것처럼, 저같은 모범생들도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청년들 사이에 꿈과 비전, 열정이 사라지고 염세와 회의가 가득한 이 시대에, 꿈을 꾸는 청년들이 일어나기 위해선 구속사의 가치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번 주일 말씀에 #039즐거워하라#039라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작년 겨울, 에스더 큐티를 하며 하나님께 여쭌 적이 있습니다. #039하나님, 언제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 할까요?#039. 그 때에는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제 마음에 뚫고 들어오진 않았지만, 아주 작은 목소리로 #039네 영혼이 즐거워할 때부터.#039라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작년 그 겨울의 저에게 해주신 말씀이 그대로 응답되었습니다. 주일날 의자에 앉아 설교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가시덤불 속에 울고 있는 저를 구하러 늘 한걸음에 달려오시는주님의 사랑이 너무 고마워서 울고, 제 안에 울리던 그 목소리가 주님이 맞으시다는 생각에 감격해서 울고, 제가 앞으로 살아갈 삶이, 감당할 사명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서 울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일을 주님이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도와주실 것이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어 울었습니다.
저는 이제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신은 없고 과학이 최고라 부르짖는 이 땅에 겨자씨만한 하나님의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길러내야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무너졌겠지만,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들교회에 붙어있는 13년의 시간 동안 성경 말씀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고, 경험했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아픈 부분이 많이 남아있지만 동편 문으로 나가신 주님께서 동편 문으로 다시 들어오신 지금, 제 삶이 다시금 회복되고 살아나고 잎사귀를 약재료로 쓰는 나무가 될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