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계명이라도 실천하기 원합니다.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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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3.23
2009-03-23(월) 요한복음 13:31-38 ‘옛 계명이라도 실천하기 원합니다.’
저가 나간 후에 인자의 영광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새 계명을 주십니다.
유다가 나간 사건과 인자의 영광 그리고 새 계명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을까...
유다가 돌이키지 않고 떠난 일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어짐은 주지의 사실인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즉, 율법을 통해 명하신 사랑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자
사랑의 완결판으로서 사랑학 방법론을 이 때 주심은
당신의 사랑을 이 땅에 전파할 밀알로서 선택한
제자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유다가 어두움으로 떠난 사건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새 계명을 주시는 동기로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라는 새롭고 특별한 말씀보다
‘서로’ 사랑하라는 평범한 말씀이 더 절절히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어제, 주일 목장 예배를 통해
턱없이 부족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내 사랑의 실체를 보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평범한 사랑조차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실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새로 편성된 목장에서, 세 번째 예배를 드린 어제
벌써부터 참석자와 불참자가 확연히 구분되는데도
이런 저런 이유로 불참자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가 진정 필요한 사람은
공동체의 소중함을 몰라서 참석하지 않는 그들임을 알면서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또한 목원에 대한 연락은 부목자의 일이라는
형제에 대한 무정함 때문에 전화하지 않은 것임을 고백합니다.
처소가 없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드려야 하는
목자의 물질적 섬김을 물라준다는 서운함 때문에
메아리 없는 사랑을 외면하는
대가를 바라는, 삯꾼 목자의 마음이 내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 내가
메아리 없는 사랑에는 입도 벙긋하기 싫은 내가
어찌 새 계명으로 주신 사랑씩을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옛 계명이라도 실천하기 원합니다.
내 수준에 맞는
내 믿음의 분량대로의 사랑이라도
지체에게 온전히 전하기 원합니다.
다른 교회에 오래 다닌 어떤 형제가 지적한
죄와 고난에 대한 오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치유를 위한 해법의 도출과 공동체 중보의 문제라도
온전히 해결할 수 있기 원합니다.
예배 시간의 제약 때문이라는 변명을 늘어놓기 전에
부족한 내 능력과 지혜, 섬김의 분량을 인정하고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환경에서
내 몸같이 사랑하라신 옛 계명이라도
온전히 실천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