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형제를 내 자식만큼...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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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3.21
2009-03-21(토) 요한복음 13:1-20 ‘내 형제를 내 자식만큼...’
섬김에 대한 묵상을 하고 있는데, 대학 졸업반 딸이
잠자리에서 갓 빠져나온 부스스한 얼굴로 부탁을 해옵니다.
‘아빠 계란 후라이좀 해줘’
분이 났지만 내색을 할 수 없었습니다.
‘네가 해먹으면 안될까?’
‘노른자 안 터지게 하기가 어려워서...’
얼마 전, 딸을 잘 아는 어떤 지체가
이제 자식 좀 내려놓으라며 댓글로 권면했을 때
‘내가 자식을 얼마나 끼고 돌았다고...’
콧방귀를 끼며 무시한 적이 있었는데
자식에 대한 나의 마음이
섬김이나 사랑이 아닌, 우상 숭배의 그것임을
그 지체는 이미 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말씀 묵상을 도와주시려고
순순한 사랑의 마음과
내 유익을 위한 우상 승배의 마음은 본질이 다른 것임을
딸을 통해 보여주신 모양입니다.
순수한 사랑은
그런 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순수한 사랑은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제나 저제나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자기를 배신할 자까지 사랑하라 하십니다.
손과 머리가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이유는
발이 가장 더러운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더러워서 더러운 게 아니라
더러운 마음이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겨지는 곳이
발꿈치이기 때문일 겁니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맨 마지막에 보여주는 곳이
발꿈치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 더러운 곳을 씻어주시되
당신에게 발꿈치를 들 자의 발까지 씻어주십니다.
자신을 배신할 자의 가장 더러운 곳까지 씻어주는 게
사랑이라 하십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말씀으로 받기 원합니다.
잘나서, 예뻐서, 부모 말 잘 듣는다고
눈에 넣고 사는 게 아니라
장점보다 더 큰 단점 때문에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그 강퍅함이
나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을 깨닫게 하는 나의 거울이기 때문에
애통해하며 감싸주는 게 사랑이라는 말씀으로 받기 원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사랑하기 원합니다.
내 형제를 내 자식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