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즉사 사즉생 (生卽死 死卽生)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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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3.18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사용하는 말입니다.
특히 위기의 상황에서 이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4)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자신의 형체를 잃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 한 알 그대로 남게 됩니다.
그러나 밀이 떨어져 자신의 몸에서 싹을 내면
자신의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애벌레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
일생 애벌레로 추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나 고치 속에 들어가 자신이 죽으면
아름다운 나비로 화려하게 태어납니다.
죽음의 상황을 넘나드는 것은 죽기 위한 고통이 아니라
아름답게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난 뒤 성숙한 자신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죄의 종으로 사망의 삯을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명의 자리로 인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부활로 연결되었습니다.
다시 부활하심으로 인자가 영광을 얻었습니다. (23)
부활의 영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26)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나의 목표, 관심, 습관, 취미 등
나의 것이 죽고 없어지기 전에는 예수님을 닮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고통스럽게 억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마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목표와 관심, 습관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흥미있고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8)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하기에 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탁월한 선택이기에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이 더 재미있기에 스스로 선택합니다.
그래서 전에 것은 배설물을 버리듯이 깨끗이 잊고
그리스도를 따라서 즐겁게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많은 사도들의 삶이고, 신앙 선배들의 삶이었습니다.
많은 열매를 얻으려면 죽어야 합니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고리를 끊으려면 죽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름답게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하소서.
죽음 이후의 영광스러움을 보게 하소서.
주께서 변화시키실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