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로의 누이들
작성자명 [김진경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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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3.18
지난주 포항에 사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곧 바로 세째 동생에게 전화가 왔었냐고 합니다.
올케가 그 전 주는 이사와 결혼기념일이 있었고 지난 화요일에 생일이었는데
아픈 남편에게 축하 받지도 못하고 함께 누리지도 못하니 뾰로통하게 대하는 것이 거슬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팅을 떠나 삼일만에 낫게 하겠다고 남동생을 데려갔었던 넷째 동생네가 자기 병원에서 치료하기를 포기한 이후에 셋째네 근처로 이사한 올케는 아직 불륜녀와 함께 교통사고 이후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못한 남편과 이제는 모시고 살아야 할 것 같은 시어머니 때문에 더욱 큰 부담감이 자라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두달이 넘도록 당신의 아들이 있는 병원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으시는 시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 (더구나 엄마는 사건 이후 돌아오시는 듯 했지만 다시 돌아간 이단교회로 올케를 데려가고자 애를 썼기에....)
그러던 그날 올케는 여전히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과 시어머님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득하여 셋째동생에게 투정을 하고 엄마는 자신을 무시한다며 올케를 욕하고 그 동안 쌓였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니 옆에서 두 달이 되도록 넘게 들어줘야 했던 셋째동생은 전엔 그런 불을 끄려고 저를 부르곤 했었지만 이번엔 드디어 한마디씩 해버렸습니다.
이제 이혼을 생각하겠다고 하는 올케에게는 그 말에 꼭 책임지라고 엄포를 놓고, 엄마에게는 그렇게 자식들 힘들게 하려면 나가서 맘대로 사시라고~ 그러니 엄마는 좋아하시며 나가셨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들을 나누며 말씀이 없어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형제들에게 전화상으로는 공감 외에는 저도 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언니의 걱정은 그렇게 올케가 가버리면 제정신이 아닌 동생은 어떻게 하느냐였습니다. 작년 봄 빚을 계속 만드시는 엄마에게 돈을 드릴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있었을 때도 언니는 마지막에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돈을 안 드려서 걱정하다 쓰러지면 누가 데리고 사냐고.... 그때도 제가 모신다고 했고 지금도 내가 데리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배는 필수가 되는 삶이 될 것이기에...
목사님이 방문하신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감동이 없는 언니가 안타까웠지만 전화로는 그저 들어 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날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한복음 11장이 우리 집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1:15에서 왜 예수님이 기뻐하셨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그저 기적만을 보이고자 하신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양육을 위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 같은 저의 불륜으로 빚어졌던 부지중의 살인을 알게 하시고 이쁜 것이 문제였던 리스바의 회개에 이르기까지 이끄시면서 친정아버지의 뇌경색 사건을 통해 집안의 음란과 이혼, 불륜의 죄들을 알게 하시며, 그 죄를 끊고자 시작했던 회개와 기도의 응답으로 시편65편 말씀과 함께 현재 진행 중인 남동생의 불륜까지 드러나게 하신 사건으로 온 가족들이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시며 형제들의 소소한 죄 까지도 오픈하고 회개하게 하신 벅찬 시간들이 점점 식어져 가고..
영접기도를 하고 예배를 나오던 올케는 그저 남편을 빨리 회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에 예배도 떠나고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 다니며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기도의 응답으로 주셨다는 믿음도 죄를 사하시려 재앙을 주심에 감사함도 잠시 빛을 잃고 지난 1월과 2월은 깊은 슬럼프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고 어떻게 라도 예배를 함께 올 수 없는 동생이 안타깝고 불신자였던 올케에 대한 감정이 벽을 치는 듯 힘들기만 했었습니다. 그래서 건강도 바닥을 치고 급기야 최고의 고난인 말씀묵상이 되어 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3월이 되면서 직분으로 불러주시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요한복음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시는 듯합니다.
마리아는 죄 사함을 받은 죄 패가 확실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사건이 길어지니 어찌 할 줄 몰라서 심령이 밤이 되어 실족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살려주지 않았다고 불신의 감정에 빠져 밤을 맞고 말았습니다.(11:10)
마르다는 열심히 분주하고 자기 열심히 많아 눈앞에 주님의 말씀에는 관심도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때문에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나가 맞이합니다.
마리아는 그저 집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절망하여 밤을 누리고 있는 마리아가 바로 저였습니다. 보이는 것이 없는 것, 되어지는 상황이 없는 것에 모든 소망의 믿음을 져버리고 그냥 나자빠져서 있는 저였습니다.
나사로가 썩어지는 것을 기다리실 수밖에 없는 주님의 슬픔이 내게 임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니에게 이 말씀을 두고 큐티 나눔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적용하고 산다고 하면서도(하나님이 주신 사건이라고 그래서 하나님이 끝내실 사건이라고 장담만 했지)끝까지 믿지 못하고 있는 마리아가 저라고 그래서 절망하여 겨울동안 처박혀 있었노라고 저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 이후 20년이 넘도록 우리 네 형제들의 부모역할을 혼자 도 맡았던 언니이기에 각자의 삶에 바쁜 형제들에게 서운하고 특히 불륜을 저지른 믿었던 남동생의 사건으로 배신감에 힘들어하는 언니의 몫은 마르다가 아닐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언니의 최선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야 하기에 예수님이 마르다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려고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거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냐고 남동생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있는 것은 나와 언니의 믿음을 위한 주님의 배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상을 온 것이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유대인인 것을 보니 안 믿는 올케가 아닌 믿는다 하는 누이들을 위한 사건이 아니겠냐고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벽치기 같은 불신자 올케와의 대화가 바로 주님과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아니었겠냐고 하였습니다.
믿음 없는 누나들 때문에 남동생과 올케가 그야말로 온 삶을 건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CTS를 통해 목사님 말씀을 듣는 다고는 했지만 창세기 말씀을 시작부터 다시 조용히 듣고 묵상하기를 권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이 인정하기 힘들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언니의 삶이기에..
이혼 후에도 여전히 자식들을 힘들게 하시는 부모 역시 다른 형제들에게는 너무 큰 고통이고,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존재가 되었기에 언니는 더욱 역할이 커 질 수밖에 없었고 동생들은 그런 언니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의지하며 도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언니는 나름대로의 권세를 가진 우리 형제들의 실세였기에 모든 책임과 걱정을 짊어진 무거운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의지하여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며 살았고 큰 사건이 터지면 방법이 없을 때까지 자신의 방법으로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돌아온 이후 주님께 가까이 하고자 애를 쓰지만 말씀과 나눌 공동체가 없는 가운데 삶이 해석이 안 되어서 나 때문에 수고하는 부모와 동생을 이해할 수 없고 용서는 더욱 힘들기만 합니다.
그런 이때에 마리아의 집 사건을 통해서 주님이 찾아와 주신 사건이 아닌가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최선보다 바보 같고 작아 보이지만 그 최선 위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나누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고는 형제들이 아닌 주님이 다 갚아 주실거라고 위로를 전하면서...
저도 동생만을 생각 할 때는 교회를 안가는 올케가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동생이 예배를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믿음도 없고 머리도 나쁜 지혜로..)
그러나 가정을 중시하시는 하나님의 법이 우선이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그래서는 안되고 그것이 얼마나 망하고 지옥을 사는 일인지 저의 이혼의 아픔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혼을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사건 자체를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치 않는 것이 아니겠냐고 전하였습니다.
언니가 부디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마르다 처럼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만나셨지만 주님은 마르다 처럼 대화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나사로가 어디있는지만 물어 보시고 (마리아의 불평을 들으셨기 때문일까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잠시라도 참 보기 싫으셨을 것 같습니다.
저라면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를 끝까지 양육하시며 돌문을 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베를 동이고 얼굴에 수건을 두르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르다와 긴 시간을 대화하셨는데도
11:45에는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유대인이 많이 믿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부족했던 어쩜 오라비 나사로가 예수 믿고 죽었으니 천국 갔으리라는 구원의 확신도 없어 보였던 마리아에게 실망하셨을 것 같은데도 마리아에게 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회개하는 나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시선은 여전히 먼저 말씀 들은 나 한 사람을 향하고 계십니다.
그 민족을 위하여 흩어진 자녀의 하나 됨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에브라임에 유하셨습니다.
제가 살아나는 곳은 여전한 방식으로 모여 말씀을 나누는 우리들 공동체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의 사건으로 표적을 듣기만 했어도 증거 하는 자들이 있어 주님을 찬양케 되도록 계속되어짐을 보면서 동생이 회복되는 시간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이 깊어지리라 기대해 봅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 모든 기도의 응답이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인 것을 새삼 묵상하면서 왜 다른 사람 영혼 구원위해 나아가면 내 가족 구원해 주신다고 목사님이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지 이제야 깨달아 집니다.
그러니 당황하며 받았던 직분과 훈련의 부르심이 가족구원을 위한 기도의 응답으로 주셨음을 확신하며 감사하게 받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두고 가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면서 가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사건 속에 있으면서도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도 몰랐고 말씀 가운데에서도 보이는 것이 없다고 절망했던 저에게 나사로 사건을 통하여 제게 이루어질 것임이 가슴으로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어찌 생각할까 두려워 못했는데 이제는 두려워하던 마음을 접고 올케에게 듣든지 아니 듣든지 큐티 나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그에 대한 아무런 답장은 없지만 이제 제 자신과 올케의 절망에 앞서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 말씀을 통한 누이들의 회개와 믿음을 따라 비록 지금은 스스로 자신을 움직일 수 없는 과거와 현재의 중간지점에 멈춰 있는 남동생이지만 믿지 않는 가족들과 불신의 돌을 굴려내고 베를 동이고 수건을 두르고 무덤에서 나와 새 사람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가 될 그날을 실상으로 두고 바라보며
날마다 100% 옳으신 말씀을 좇아 예수 믿는 흔적을 남기고자 애쓰며
회개와 사랑의 향유 가득한 옥합을 깨쳐드리는 마리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냥 붙어만 있어도 나를 살게 해 주시는 우리들 교회 모든 가족
특별히 생명줄이 되어주시는 목장 식구들
왠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게 하시는 목사님 진짜 사랑합니다.
많이많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