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깨뜨리지 못하는 향유옥합
작성자명 [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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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3.16
주님을 온전히 사랑함과 그렇지 않음은 돈에 대한 생각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마리아는 1년 치 품삯에 해당하는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에 부어드렸고
눈물을 흘리며 머리털로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향유 옥합
을 부어드린다 해도 오히려 부족할만큼 그녀의 전부였고, 생명이었습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에게 향수는 커녕 비누도 아까워할만큼 경제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다른 가치와 상대적 비교가 척척 나올 정도로 그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돈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제 돈 쓰는 것도 자기 돈처럼 아까와하니 말입니다.
마리아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고, 가롯 유다는 아무리 예수님과 동거했지만 돈이 전부였습니다.
믿음의 차이에는 돈이 있음을 또 봅니다.
저도 마리아처럼 헌금을 해왔습니다. 열심히 십일조 헌금을 했고, 개척교회에서는
건축헌금도 했습니다. 퇴직금 받은 것도 십일조를 했었고, 생활비 대출을 받았을 때도 십일조를
떼었었습니다. 남편이 투자하라고 맡긴 돈도 남편 몰래 십일조를 떼어서 냈습니다.
물론 마리아와 같은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기쁘게 드린 적도 있었지만
십일조 내는 일은 늘 나와의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다른 헌금들은 드리지 못했습니다.
십일조를 냈다는 명분으로 여기까지~ 하면서 늘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오늘 가롯 유다와 같은 마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주일학교 때부터 시작된 신앙생활의 연륜으로, 제 의로 십일조까지는 드렸지만
너무나 돈을 아까와하고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헌금들은 드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향유 옥합은 샀는데 아까워서 깨뜨리지 못하고 예수님께 부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 속에는 주님의 능력보다 돈의 능력이 더 커보였기에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 고백하고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고백하고
아무리 목장에서 오픈을 하고 부목자가 되고 말씀을 깨닫고 회개를 했다고 해도
저의 삶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말 질긴 쇠심줄처럼 저에게는 여전히 주님보다 돈줄인 남편과 그의 사랑이 더 좋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두려웠고, 남편의 품에 안기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주님은 절대 속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마귀사단도 속지 않았습니다.
제가 양다리 걸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마리 여우에게 300마리의 양들이 골탕을 먹고 죽어 자빠지듯이
저는 제가 두려워하는 돈, 제가 두려워하는 물주- 제 남편에게 15년 동안 비굴하게 종노릇하고
보상을 위하여 일하는 삯군 아내로 살았습니다.
어제 제 남편에게 너와는 생각이 너무 달라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부부의 의미는 이미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식을 기르기 위한 의무만 있을 뿐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그동안 가졌던 꿈들이 모두 비현실적인 환상들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완전히 깨져버리는 소리가 들려서 울면서 웃었습니다.
남편이 주님을 떠나던 그 옛날에 이미 영적 정신적으로 깨어진 관계였는데 저는 미련하게도
오직 육적인 관계 회복을 위한 방법론만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목사님의 말씀, 이혼 직전에 와서 회복된 가정들, 변화된 남편들을 보면서
내 남편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고, 내 남편도 변화되고,
우리들공동체에서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삯군 아내였던 저는 보상을 기대했습니다.
그 보상은 남편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통해 다시 나에게 오는 것이었습니다.
즉 주님과의 관계 회복, 구원도 나와의 회복을 위한 방법론이었고,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인도하지 않는 목자는 삯군 목자라고 하셨는데,,
저는 남편의 마음을 저에게로 돌리려 했던 삯군 아내였던 것입니다.
제가 정말로 삯군 아내인 증거는 또 있습니다.
보상받을 것 없으면 버리고 떠나는 삯군 목자처럼 저 또한 그를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가 평소에 유학, 유학 외치던 캐나다로, 우리 부모님 옆으로 가버리고 싶었습니다.
아무 기대할 것 없는 사람에게 더 이상 붙어 있기가 딱 싫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다가 떠난 자의 그 공허함과 두려움, 그래서 더욱 돈과 일에 집착하는
그를 불쌍히 여기지 못한 죄, 세 아이의 교육비 명목으로 끝없이 돈을 요구하며 목줄을 조인 죄,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홀로 발버둥치며 밤새우는 그를 의심하며 괴롭힌 죄,
피폐한 그의 영혼을 보는 눈이 없어서 표면적인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마다 요동한 죄....
이런 저의 죄를 깨닫지 못하니 온통 미련하고 유치한 생각들 뿐이었고, 처방들은 꿀꺽 삼키고
지혜는 커녕 세상에서 가장 말씀이 안들리는 바리새인이고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동안 기가 막힌 말씀을 들어왔지만 저는 우리들교회에 오기 전이나 2년이나 된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이 지겨운 모습에 절망하고 또 좌절합니다.
무늬만 크리스찬이었지 여전히 세속적인 제 삶이 남편 앞에서 주님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답안지는 이미 제 손에 있습니다. 아는 대로 사는 것, 순종만이 해결입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목사님의 말씀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제가 소경이고, 눈 뜬 소경이고, 이제 광야로 쫓겨남을 당했습니다.
쫓겨남을 당했더니 이제 나의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영의 눈이 떠지고 허상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온 우주에 나 홀로 있는 것처럼 나를 아시고 사랑하시는 주님, 변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며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심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남편도 연약한 자임을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선한 목자가 되어 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겠습니다.
세상 속, 골짜기 아래에 있는 자를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겠습니다.
싱싱한 풀과 공기와 물을 주시기 위해 나를 우리 밖으로 내어놓으신 훈련을 잘 받겠습니다.
내가 내버리지 못한 자존심, 이기심, 야망, 보상심리, 남편우상, 자녀우상을....
스스로 버릴 권세가 바로 나에게 있습니다. 내일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오늘 결심합니다.
이제는 오직 주님이 나의 신랑, 다른 양 살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다른 양 중에 있는 남편을 주께로 인도하는 선한 아내가 되기 원합니다.
이제 정말 깨뜨려지고 싶습니다. 정말로 버리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내 연민에 우는 자가 아니라 남편의 영혼을 위해 우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다른 음성이 아닌 주님 음성만 들으며 골짜기 위로 올라가는 양이 되길 원합니다.
향유 옥합이 깨어져야만 비로서 향기가 진동하게 되듯이
이제는 온전히 예수님 앞에 부어지는 마리아의 향유 옥합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룻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저를 위해 수고한 남편에게,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의 장례식을 축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