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 후서 6:1-7:1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구원의 직분이 비방 받지 않도록 내가 감수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요즘 유난히 저에게만 까다로운 한 직장 상사로 인해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그 분은 상담 중에 모든 사람에게 좋은 성과를 줄 수 없어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자신을 어려워하는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 그것도 부정적으로 말입니다.
저는 황당했습니다. 오히려 반대가 아닌가요?amprsquo
이 분은 어쩌면 공과 사가 분리되지 않는 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성과는 객관적인 지표로 하면 되고 성과와 상관없이 그냥 저를 팀의 일원으로 대해주시면 되었을 것을 말입니다.
이 분 밑에서 일하면 여러 부류가 생깁니다.
이 분과 독하게맞짱을 뜨거나 견디지 못해 퇴사를 하거나 혹은 이 분의 독특하고 까다로운 캐릭터에 일일이 맞추며 마침내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단, 그 분의 캐릭터에 맞출 때에는 그 분이 눈치 채지 못하게 세련된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폭풍 반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괴로움의 크기가 퇴사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분의 캐릭터에 맞출 수 있는 센스도 없으니 딱 중간 정도의 괴로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평가를 의식하며 심히 괴로워하는 한 청년이 나옵니다.
철학자는 다른 사람의 미움이 두려워서 미움 받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지 말고
차라리 미움 받으며 타인을 만족시키는 인생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며
자기 인생이 요구하는 과업에 충실한 인생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인정 중독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말자. 나를 미워하는 것은 그건 그 분의 일이고 내 일이 아니니 그 분에게 맡겨두고,
나는 내 일을 잘 하자. 내가 하고 싶고 내게 잘 할 수 있는 일들에 좀 더 집중해보자.amprsquo
그래 이건가보다!amprsquo 하고 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게 하고amprdquo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게 하고amprdquo라는 말씀은 적용 목적에 따라 굉장히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적인 측면에서) 나의 인정 중독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게 한다면amprdquo 이렇게 사는 것만큼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착한 어린이 증후군에 걸리거나 혹은 인정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행동 특성과 같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의 특성은 행여나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게 하지amprdquo 못하면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굉장히 괴로워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제가 온 몸으로 겪어서 이리도 잘 알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과 같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상대방의 구원을 위해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게 하고amprdquo를 적용한다면
이를 적용하는 사람의 마음도 적용한 결과도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트레스 받지 않기 위한 철칙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것도 자기만족, 자기 욕심이라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이것을 적용하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님은 이것을 새로운 차원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amprdquo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하였다고 하십니다.
바울 선생님은 인정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분이셨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무늬만' 아닌 '제대로' 적용하기의 달인이셨습니다.
저는 착한 어린이 증후군과 인정 중독으로 비굴하게 굴종하며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내 뜻과 달리 인정받지 못하니 사는 것이 너무나 괴로운 인생이었습니다.
요즘 저는말씀 묵상을 통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인정 중독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날마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주님은 오늘은 한 차원 높은 도전을 제시하십니다.
굴종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순종하며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는 삶amprdquo을 살라고 말입니다.
물론 제가 평생을 살아도 바울 선생님처럼은 절대 못 살것입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는 적용은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한 철학자의 정반합 변증법이 생각났습니다.
정반합 변증법대로라면
나의 인정과 만족을 위해 맹목적으로 비굴하게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기amprdquo - 정(正)
인정 중독 탈피, 타인의 이목에서 자유하며 ampldquo타인의 인정에도 반응하지 않기amprdquo - 반(反)
구원을 위해 옷깃을 여미며 다시
ampldquo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게 하지 않는 적용하기amprdquo - 합(合)
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영적인 측면에서 그 직장 상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상사가 자신이 예전에 다니던 교회가 불투명한 재정으로 분란을 겪었으며 실족하여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직장에서는 잘 나가시지만 자세히 보면 영적으로는 가난하신 분이셨습니다.
주님과의 교제도 없으시고, 고난이 닥쳐도 그 가운데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평안도 받지 못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묵상하고 나니 그 상사에 대해 화났던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주시며 제 마음을 시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적용으로 점심 때 기도하러 갈 때, 일주일 동안 그 상사 분의 영혼을 위해 구원을 위해 가장 먼저 기도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