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8. 고후 4장1~18 질그릇에 담긴 보배 (김세영 목사)
1장은 고린도교회에 인사와 감사의 말
2:1~13은 갑작스런 전도여행 변경과 방문하지 못했던 일들과 자신을 모험했던 신도를 용서에 대해서
2:14~17은 사도로 직분으로 부름 받는 내용에 대하여
3장은 그리스도의 편지로써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진 새 언약의 일꾼이고 새 언약으로 받은 영의 직분은 장차 없어질 것이 아닌 영원할 것이고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는 세상의 가치관의 수건을 벗은 얼굴로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한다.
4장-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써, 사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설명한다.
4:1~6은 영광의 직분을 받은 자로써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7~15은 직분을 감당하면서 함께 받을 고난의 의미에 대해서
16~18은 고난 가운데 사명을 감당했을 때 장차 받을 영광에 대해서
4장의 결론은 사도로써 직분을 고난 가운데 감당하고 있으면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한다.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내가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한다. 우리와 너희가 있어야 하고 내 환난과 위로를 말씀으로 잘 닦아서 공동체에 나누어줄 때 잘 통과할 수 있다. 우리와 너희는 어떻게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바울은 내가 직분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우리가 받았다고 한다. 직분을 받음과 동시에 긍휼하심을 입었다고 했다. 긍휼하심은 불쌍히 여기심이다. 우리가 직분을 받으므로 이미 우리를 긍휴히, 불쌍히 여기고 계시다. 어떤 직분을 받고 있는가? 각자의 역할와 책임과 자리에 따라 나눈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사도, 성도로써 부르심을 받았다. 각자 가정과 일터에서 위치가 어디 있던지 사도, 성도로 불러주셔서 이 자리에 있다. 그 부르심 순간부터 긍휼하심을 입은 자,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는 자리에 있게 된다.
바울은 우리가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받아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울은 고후에서 낙심을 4번 사용하는데 본문에 3번 나온다. 바울은 3번의 전도여행을 통해 많은 교회를 세웠지만 매 순간이 위기이고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버리고 감옥에 투옥되고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기도 했다. 사도로 정체성까지 의심을 받고 스스로 변호하면서 나가야 했다. 그런 삶을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낙심할 일이 많았다. 그런 바울이 낙심하지 않은 것은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절대치의 고난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사도로써 성도로서 자격이 있는지 직분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낙심이 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배우자, 자녀를 보고 낙심되고, 변하지 않는 나 때문에 낙심이 될 수 있다. 그런 우리를 향해 바울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었기에 낙심하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올해 여름사역인 국내, 해외 아웃리치를 진행했다. 저에게 두 곳이 모두 새로운 곳이다. 본격적으로 사역을 위한 모임 하던 날 말씀이 렘1장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이 사로잡혀가기까지 임한다고 시작하여 마지막에 ampldquo내가 너를 여러 나라와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무너뜨리고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amprdquo 이다. 그날 말씀을 전하는데 본문처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몇 년간 사역과 개인적인 사건을 통해 말씀대로 이루어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 맛보게 하셨다. 사역기간 동안 예레미야 말씀가운데 뽑고 파괴하는 ...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 가셨다. 국내 아웃리치를 떠나는 날 언약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마지막 날에는 순종하지 아니하면 뽑아 멸하리라고 하셨다. 저주를 받고 뽑히면서 아웃리치가 마무리 되었다.
해외 아웃리치는 출발하는 주일 말씀으로 살았으나 죽은 사데교회 말씀과 예레미야 큐티는
내가 땅끝에서 여호와인 줄을 알게 하리라고 말씀으로 눈물로 출발하게 하시더니 마지막 날은 토기장이가 옹기를 깨뜨리고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신다는 말씀으로 다 매장해버리고 마무리하게 하셨다. 과분하게 말씀으로 하루하루 이루어 가시는 모습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하시니 하루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은혜가운데 말씀으로 이루어진 아웃리치를 경험하고 여름 사역을 마친 후 문제가 발생했다. 신실하게 말씀대로 이루어진 삶과 사역을 경험하게 하셨는데 몸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회복되지 않았다. 한달 넘게 병원을 다녔지만 회복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아내가 지인에게 상담하여 들은 처방이 남성 조기 갱년기였다. 청년으로 7년 사역자로 4년을 보내니 어떤 처방을 들어도 그런 것같다는 생각과 전에 저질렀던 음란한 죄패로 연결이 되고 내 삶의 결론으로 인정한다. 남성 조기 갱년기를 겪는 사람의 특징은 완벽주의, 예민하고 이기적인 것이다. 어떤 병명이던 인정하고 여름사역을 돌아보았다. 말씀대로 이루어졌다고 했지만 말씀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경험을 의지하고 생각한대로 진행하고 어려운 순간을 말씀으로 넘어간 것이 내 의가 되어 그 의로 누군가 판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내 사람으로 생각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을 피하고 싶고 사역이 끝나니 말씀과 멀어졌다. 몸과 마음이 지치니 여전한 방식으로 살아야하는 것에 두려움과 걱정이 늘어갔다.
잠시 후 겨울사역을 준비해야 하니 이전과는 다르게 기대보다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런 두려움은 낯선 감정이서 더 두려웠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냐고 했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괜찮다고 하지만 괜찮지 않은 상태가 한 달 넘게 지속되어 낙심이 되었다. 제 모습에 낯이 설었다. 남성 조기 갱년기는 약이 없고 인정하고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사는 것이 처방이다.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해야 했지만 쉽지 않았고 이 사역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낙심하고 있던 중 평원님이 그 모습이 당연하다고 사역자로 부모로 가장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난다고 하셨다. 힘든 상황가운데 부부가 공동체에서 나누고 가고 있으니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항상 자신 있고 된다고만 생각하면 조증이라고 하는 말에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주심을 느꼈다. 오늘 본문에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긍휼하심을 받은 것이다.
amphearts어떤 일에 낙심하고 있는가?
amphearts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심을 믿는가?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않는 우리에게 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amp#9312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amp#9313속임을 행하지 않고
amp#9314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지 않게 해야 한다.
수요예배 때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방언으로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직분을 받고 긍휼하심을 입어 처음으로 하는 일이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는 일이다. 어떻게? 우리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고백하면 버릴 수 있다. 이미 음란, 교만을 고백했으니 숨은 것이 아닌 드러난 부끄러움이고 아직도 끊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 사역자, 목사가 되었기에 고백하기 쉽지 않은 것이 있다. 함께 사역하는 분들이 어떻게 부르심과 사명을 받았는지 말할 때 놀라는 부분이 있다. 저는 친가는 4대, 외가는 3대, 할아버지, 아버지, 장인도 목회자이다. 3대가 같은 신학을 나온 동문이다. 감사하지만 반대로 교만하기도 쉬운 환경이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님이 목회자가 되도록 기도했고 예비목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안정된 교회에 목회를 하셨지만 아버지는 큰 교회에 수석 부목사로 순종하지 못하고 교회를 개척하셨다. 그 후 경제적으로 늘 부족하여 목회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목회자들의 좋지 않은 얘기를 들으니 목회자는 무시되는 단어가 되었다. 어머니는 목회자가 되지 말라고 공부하지 않으면 신학교 가게 된다고 협박하셨다. 주변에 넘치는 목회자의 힘든 얘기를 접하게 되었다. 청년들이 결혼에 대한 힘든 얘기를 들으니 두려워하고 왜 해야 하는지 회의적일 수 있다. 청년의 결혼의 대한 생각과 저의 목회에 대한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무시하는 신학교를 갈 수 있게 잠이라는 감사한 선물을 주셨다. 들어가보니 사명을 받아 온 사람도 있었지만 성적에 맞춰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무시하는 마음이 커졌고 원망이 되며 술과 음란에 빠졌고 사명감도 없었다. 아마 있어도 없다고 부인했을 것이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고 도망 다녔다. 하나님은 결국 우리들교회로 인도하셨다. 목사님의 말씀은 전혀 다른 삶을 보여주셨다. 청년 때는 지은 죄가 있으니 목사님을 피해 다녔고 사역자가 되니 가까이 뵙게 되었다. 기존의 목회자들과 달리 사소한 것을 결정할 때도 그 날 말씀으로 묵상하고 물으시며 말씀 하나만 붙들고 안타까워하시고 아파하시고 체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가 부끄러웠다. 죽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말씀으로 살아난 간증을 듣고 맡겨진 부서사역을 하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사역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목사님께 사역 그만하라고 하시면 졸업이라고 한다. 목장에서 이런 얘기를 나누면 다른 생각하시면 하나님께서 가만 놔두지 않으시는 것 아시죠? 하고 한다. 목사님께 사명감 없다고 혼날 것 같아 숨기고 싶었지만 이것이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끝내실 때까지 이 길을 갈 예정이다.
amphearts나에게 버리지 못한 숨은 부끄러운 일은?
amphearts나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속이는 일은 없는가?
바울은 사명을 받은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말하고 긍휼하심을 입어 낙심하지 않고 직분자로서 예수를 전하는 삶을 살게 되면 과정에서 함께 겪어야 할 고난이 있다고 한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릇은 담긴 내용물을 돋보이게 한다. 음식을 담을 때 성격과 특성에 맞는 그릇이 필요하다. 직분을 받은 이유는 예수가 그리스도 되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 보배를 담는 그릇이 화려하고 눈에 띤다면 내용물을 가릴 수 있다. 이 보배는 그릇이 보잘 것 없고 연약할수록 내용물들이 빛나게 보일 것이다. 세상은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그릇에 집중하게 만든다.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가 서로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것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눈이 수건으로 가리어져 있으니 그릇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고 했다. 역으로 사람은 중심을 보는 능력이 없다. 우리는 보여지는 겉모습에 나도 속고 남도 속는 인생이 된다. 그래서 목사님은 믿음인가? 성품인가? 라는 질문을 하신다.
예전에 심방을 다녀와서 목사님께 A4 용지 5장의 보고서를 보냈다. 답장이 한 줄 왔다. ampldquo세영이는 말하는 모습이 부드러워야 하고 남을 공감해주고 비호감의 모습에서 탈출해야 한다. 수고!!amprdquo 얼마후 부부목장 수련회에서 사역자 소개할 때 7년차 김세영이라고 했다. 그 다음 주 목사님은 사역한지 1년 밖에 안 되었는데 왜 7년차라고 했냐고 하셨다. 약간 억울하기도 했다. 간사 4년을 했는데 인정해주시지 않은 것 같았다. 보배가 아닌 그릇, 질그릇이 아닌 금그릇, 은그릇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음이 깨달아졌다. 목사님께서 정확하게 보시고 필요한 말씀을 해주셨다. 질그릇 가운데 보배를 드러나기 위해서 질그릇이 질그릇 같아야 하고 그릇이 깨질 때 보배가 드러난다. 하지만 내가 질그릇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렵다. 그런 우리에게 담을 수 없는 보배라는 복음을 허락하셨다.
amp#9312우리의 보잘 것 없는 그릇에 담으셨으니 그 보배가 더 빛날 수 있다.
amp#9313그 보배를 가졌기에 그릇된 우리도 지키고 가신다.
결국 고난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내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지고 내 그릇이 보잘 것 없는 질그릇이 되었을 때 그 안에 진리가 드러난다. 사도가 직분을 감당할 때 고난이 필요하고 결룩 고난의 끝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주는 것이다.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난의 끝은 예수와 함께 죽음에 넘겨지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부활의 생명을 얻는 것같이 나의 죽기까지의 순종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이기 원하신다. 어린 양의 진노와 우주적 재앙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언가 된 다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모습에서 전해야 한다. 이것이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는 것이고 사망이 우리 안에 역사하여 너희 안에서 생명을 역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우주적 재앙의 사건가운데 말씀이 들리고 결국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전하는 것이다.
저에게 주신 우주적 재앙이 무엇일까? 나의 죽을 육체에서 생명이 드러나기 위해 주신 사건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저의 가장 큰 이슈는 41개월된 아들이다. 여러 사역을 거치면서 상담을 했고, 들은 말씀이 있고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대해 배웠다. 그래서 조금은 나은 양육을 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아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한다. 어린이 집을 다니는데 가지 않겠다고 한다. 이번에는 막무가내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TV와 핸드폰을 보지 않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그랬더니 하루 종일 그렇게 보냈다. 그 후 참여수업에 참관을 하는 기회가 있었다. 아들은 한 가운데 앉아 눈을 감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담당교사가 아니라고 영어수업이 싫다고 소리 지르며 나와 수업에 빠지게 되었다.
담당 교사도 8개월동안 처음 보는 모습이라고 했다. 또 어린이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외출을 금지하고 허락을 했다. 일주일 동안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켰다. 이런 상황이 자기 통제가 잘되었니 싶기도 했지만 4살짜리가 보일 수 있는 행동은 아니라고 한다. 저의 아들과 같은 부서에 계신 집사님이 특별한 아이인 것 같고 호불호가 강하고 자기 의견이 확실하다고 하셨다. 그 강한 특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집단을 만날 때 많이 힘들 것 같다며 새벽설교를 들어보니 나와 똑 같다는 것이다. 제가 그동안 많은 행동들이 아들에게 기준이 된 것 같다.
동료사역자들과 나눔에서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기를 싫어하고 경계를 만들어 안과 밖이 뚜렷하고 좋고 싫음이 뚜렷하여 표정에서 드러나 본능적으로 행동한다는 저의 모습을 직면한 후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답답하고 아팠다. 이것은 저에게 주신 사건이다. 머리로는 변해야하는지 알고 있지만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변하려는 의지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모델이 되는 목사님을 보게 하시면서 변해야 하는 방향을 보여주셨다. 호불호와 옳고 그름이 아닌 구원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본능이 아닌 복음을 쫓아야 하고 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내가 좋아하는 일만 아니라 구원을 위한 어떤 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말씀을 인도함을 받아 가야 하는데 그것은 살얼음을 걷는 일이고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것임을 보게 하셨다. 나는 한계가 있다고 선을 긋고 변하는 모습을 거부하고 변하지 않으니 나의 생각과 방법을 고수하는 모습을 아들을 통해 보게 하신다.
결론은 제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많은 기회를 주셨고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말고 적용해야 한다. 열등감과 교만함이 가득찬 제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 말씀대로 살고자 다짐했을 때 말씀이 나를 읽고 지나가는 것이 결코 그냥 되지 않음을 깨닫게 하신다. 끊임없이 사건을 통해 낮추시고 겸손하게 하시지만 그 사건을 견디고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말씀과 찾아온 사건으로 끊임없이 예수를 위해 죽음에 넘겨져야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적용은 내가 하고 싶은 반대로 하는 것이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공동체에서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를 보고, 같이 힘들어하고 울면서 죽음의 길로 가게 하신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살게 되면 13절같이 살게 된다.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이 본문은 시편116편 10절을 인용한 것이다. ampldquo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하였을 때도 나는 믿었도다amprdquo 고난과 고통의 사건가운데 그리스도를 믿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이 내가 고백할 것은 딱 하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것을 믿고 말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면 14,15절을 경험한다.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나갈 때 예수가 다시 살리신 아버지께서 우리를 예수와 함께 살리실 것이고 나 한사람을 통해 많은 사람이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넘치고 결국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다.
amphearts사방으로 우겨싸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amphearts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고 가는가? 근심과 걱정과 고민만 짊어지고 가는가?
amphearts내가 고백해야 할 구원의 사건은 무엇인가?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은 나날이 고난이 쌓이고 낡아지는 것 같지만 고난의 과정가운데 말씀을 통하여 인내하고 나갈 때 나의 속사람은 새로워질 것이다. 잠시 받고 있는 경한 환난을 통해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실 것이다. 2년전 설교한 본문은 전도서로 헛된 것과 참된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나누었다. 저는 보이는 것, 헛된 것을 쫓았고 이제는 참된 것을 알아가고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고백했다. 2년 후 다른 성경이지만 같은 말씀을 허락하셨다. 저는 여전히 보이는 것을 쫓고 변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다시 고백했다. 그런 저에게 기회를 주시고 주목해야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다. 저의 모습을 점검하게 하시고 다시 고백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저를 신실하게 살피시고 위로해주시는 분이시고 인도하시는 분임을 고백한다.
<맺는 말>
바울은 직분을 받은 우리가 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직분을 받았기에 우리를 불쌍히 여긴다고 하신다. 직분을 받은 자로서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치 아니함으로 진리를 나타내고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전파하라고 하신다. 나를 우겨 싸는 고난과 환난의 사건가운데 나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라고 하신다. 그러면 잠시 받는 경한 것을 통하여 영광의 중한 것, 영혼구원을 이루어 가신다고 하신다. 보이는 것을 주목하는 삶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영원함을 그리스도의 편지로 직분을 받은 자로서 인내하며 적용하며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
<기도>
내 눈에 내 마음에 생각가운데 세상 가치관의 수건에 덮여있어 복음이 가리어져 있고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들려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내 눈을 덮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 주시어 어둠 가운데 빛이 있으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가리고 있는 세상 가치관을 벗겨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비치게 해주시고 말씀이 들리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나 때문에 낙심이 됩니다. 모든 것들을 그대로 올려드립니다. 그런 나를 가족을 불쌍히 여겨주시고고난이 의미 없는 고난이 아니고 질그릇 같은 나를 통해 예수의 생명이 나의 몸에 나타나는 사건이 되게 하여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