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의 책무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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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5.26
제목 : 메신저의 책무
성경 : 신18:15~22
어제 기독교방송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금요일에 댓글토론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그 주제가 목사님 100점? 0 점? 이다. 목사님을 교인들이 평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토론에 참여해 달라는 광고였다.
오늘 말씀에 선지자를 평가함에 있어서 증험과 성취함이 있는 지를 분별하라고 했다. 증험은 사건이 일어나서 증거로 나타나는 것이다. 선지자의 입을 통한 말해진 것이 이루어졌나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증험과 성취함이 없으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 하신다.
선지자!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그리고 선지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신약에서는 쓰여진 말씀으로 선지자의 역활을 대변하신다. 지금의 시대는 말씀을 통해 깨닫은 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목사님,교사,목자나 셀리더.. 등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공식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신져들이다. 메신져의 역활을 올바로 전하는 것이다. 더하지 말고 빼지도 말고 전하는 것이 메신져의 역활이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받고 두려운 마음으로 전하라고하신다. 말씀을 들을 때에 두려운 마음이 없다면 그 말씀에 나의 생각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쉽다.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메신저인 목사님이나 말씀을 전하는 분들의 말씀을 두려운 마음으로 듣고 있는가? 그렇치 않다. 때때로 말씀을 통해 복과 저주에 대하여 강조하면 오히려 거부감이 일어난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통해서 말씀하시지는 않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두려움을 조장할 때에는 언제나 거부감을 느낀다.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험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들에 대한 태도는 두려운 마음으로 들어야겠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가 있기 때문에, 그 권위에 순복하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메신저가 있는 반면 비공식적인 메신져도 있다. 간증을 하는 사람, QT말씀을 나누는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나 또한 매일 QT를 하는 사람이기에 나 또한 말씀을 받고, 말씀을 나누는 메신저다. QT를 할 때에도 두려워 하는 마음의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것을 주의깊게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을 나눔에 있어서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 나 또한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메시저이든 비공식적인 메신저이든 증험과 성취함의 필터가 필요하다. 설교를 들었을 때에 감동이 없는 것은 증험이 없기 때문이다. 삶이 받쳐주지 않는 느낌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좋은 말을 하여도 허공에 뜬 말씀이 될 뿐이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이 매일의 사건 속에 증거로서 자리잡지 않으면 그 또한 허공에 날리는 허무한 말이고, 글일 뿐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두려워 하는 마음과 증험이 필요함을 가르쳐 주신다.
말씀을 받는 자로서 말씀을 나누는 자로써 생활 속에 녹아있는 말씀이 되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메신저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이 곧 삶이 되게 하여 주소서
깨달음이 곧 생활이 되게 하여 주소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받고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나누게 하여 주소서
말씀과 함께 증험과 성취함이 같이 움직이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