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함께 일하는 사장이자 절친이 내게화를 내는 일이 또 있었다.
1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진 능력자 친구의 기준에는 초보인 나의 일하는 모습은 항상 맘에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런 바탕에서 나의 버벅거림이 친구의 심기를 건드렸고 크게 화를 내었다. 험상궂은 얼굴로 다혈질의 분을 순식간에 쏟아내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분을 삭히러 친구는나가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있으려니 자동으로 눈물이 찔끔나면서 서글퍼졌다.
그동안 오만가지 고난을 당하며 왔는데 그래도매는 맞지 않아봤는데..
무방비로 친구의 화를 받으며 자아가 없어지는 듯한 이 기분은 아마도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들의 느낌일것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을 '아무래도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여~' 뭔가 다른 일을 찾아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민고민했다.
그러나 암으로 노동력도 잃어버려, 나이는 오십이 훌쩍 넘어버려, 빚은 산더미에, 남편은 나보다 더 심하게 병든 몸에다, 방황하는 둘째 딸, 삼수하는 세째 딸...
무엇하나 기댈데도 없는 '나는 이 땅에서 완전 망했다'가 절로 나왔다.
별별 생계를 위한 돈버는 일을 궁리하다 종국에는 교회공동체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농사라도 짓고 사는 것이 안식의 삶이리라~ 는 생각까지 들었다.
점점 이생의 근심에 눌리며'나는 가난한 자입니다.' 하나님앞에 한탄한들 뾰족한 수도 없었다.
딱 하나 빨리육신을벗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만이 유일한 소망인듯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며 '아버지 소망이 없습니다. 나는 망했습니다. 빨리 죽는 길이 구원입니다.' 원망의 되뇌임이 가득할 때문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땅에서 남아있는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내면에서 들렸다.
아주 곰곰이 심사숙고하며 당장 주님이 내 앞에 나타나셔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 들어주겠다.'고 물으시는 동화의 한장면이 실재적 사건으로 지금 내게 임한듯 그렇게
심각하게 나의소원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내어놓은 답은 '딸들이 예수 잘 믿는 것'이라는 답이었다.
그렇게 답을 내어놓으니 망한 부모인지라 말로는 딸들을 설득할 수 없는지금,
망한엄마가 죽을때까지 잠잠히 하나님만 따라가다 유일한 존재이유로써 예수 그리스도만 붇잡고 살다가 죽었다는
그 삶의 기억으로 딸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돌이켜졌다. 이렇게 겨우 겨우 망할 생각의 웅덩이에서 건져주심을 경험했다.
그러나 곧 둘째의 생일이 되었다. 문득 기온도 떨어져 쌀쌀한데 자기 생일에도 집에 들어오지 않고 따순 미역국 한 그릇도 못 먹고 밖에서 무엇을 하며 헤매고 있는 것인가?
딸을 생각하니 인간적인 측은함에 마음이 갈기갈기 분열되어 미친듯이 웃고도 싶었다가 미친듯이 소리치고 싶었다가 미친듯이 울고도 싶었다.
말씀으로 양육하지 못하고 자녀에게 신앙의 선진으로 앞선 모델이 되지 못한 죄로 말미암아
저렇게 최대피해자인 자녀는 생일날도 집에 오지않고 방황하는데 내 죄의 처절한 결과로 인식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녀를 향한 부모의 육신적 사랑과 정으로 마음만 아팠다.
그 다음날 아침 '모든 위로의 하나님'큐티 제목을 보며 위로? 위로? 위로? 반복되는 위로의 단어를 눈으로 흝으며
믿음보다는 의혹의 마음으로저에게 위로를 주십사 되뇌었다.
그렇게 잠잠히 앉아있으려니 목장식구들의 삶이 생각난다.
평생 바뀌지 않고 여전한 방식으로 고난거리인 남편과 여상한 마음으로 가고 계시는 목자님...
자신의 욕심때문에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죄와 싸우는 집사님...나의 목장식구들...
나만 고난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에게 주어진 그냥 삶의 현장이다. 각자 짊어지고 가는 절대치의 고난...
그 삶의 현장은 옳고 그름도 선도 악도 아닌 주님께 가까이 붙어서 천국가는 통로일 뿐인 것이다.
병들고, 병들어서 가족을 부양할 능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무능력함이 힘겨워 가족을 힘들게하고..
그렇게 힘든 나의 남편을 내 곁에서 떼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전혀없는 이유는
그 남편이 오랜세월을 지나며 내 운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듯 내게 주어진 이 망한환경도 그냥 주님과 같이 걸어가면 되는삶인 것이다.
주님과 같이 가는 어떠한 환경도 그냥 가면 되는 것이다. 나의 목장식구들이 그렇게 걸어가듯이.
여기까지 묵상이 미치니 진짜 정말 순식간에 위로가 오고 안식이 임했다. 깜놀!!!
사도바울이 '모든 환난'이라고 표현한 것은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인간이기에 불편한 것은 싫고 악하고 죄된 것이라는 반응에서 자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아버지의 위로함이 넘쳐서 이 힘든 환경 힘든 마음이 위로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초연하고 자연스럽고 뛰어넘어지지만
내일이면 어떤 방정을 떨면서 힘들다고 난리를 칠지 나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은 위로가 내게 넘친다. 삶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넘어지고 실시간으로 당일의 말씀으로 일으켜세우시고 고쳐가시고 삶을 같이 살아가 주시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 자비의 하나님! 모든 위로의 하나님!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