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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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5.25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면 아무런 일도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곳엔 이방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가증한 행위들이 있다고 합니다.
가증한 행위란 혐오스러운 것을 의미합니다. 보기에도 역겹고, 싫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보기에도 혐오스런 일들을 나중에는 자기도 모르게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나쁘다 나쁘다 하면서 배우는 것, 하지 말아야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본받는 것과 같습니다.
자꾸만 보면 처음엔 이상하고 혐오스럽다가도 익숙해 집니다. 그리고 어느새 따라 합니다.
제가 담배를 처음 피울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담배피는 친구들이 싫고, 이상해 보였습니다.
담배연기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친구들이 자꾸만 피우니깐 나도 모르게 피우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100%죄인이기 때문에 악한 것을 먼저 배우게 되나봅니다. 좋은 말보단 욕을 먼저 배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가증한 일을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가증한 일은 무엇일까를 묵상해 봅니다.
9,10절에 9가지 행위자가 나옵니다. 모두 종교적인 것과 관련된 행위입니다.
세가지 종류로 구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광신적 행위입니다. 자기의 자녀를 불에 태워 몰록에게 바치는 행위입니다.
너무나 이상해 보이지만 이것이 최고의 희생이요, 신앙적 열심의 최고봉입니다. 그래서 따라합니다.
솔로몬이 감란산에 몰록 산당을 지었고, 아하스와 므낫세는 실제로 자식을 불살라 바쳤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대학교에 들여 보내기 위해 자녀를 불사르는데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두번째는 어떤 행태로든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입니다.
복술자는 미래를 점을 쳐서, 길흉을 말하는 자는 자연의 어떤 징조를 해석함으로 알려줍니다.
요술하는 자는 표적으로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자입니다. 무당은 주문을 외워 길흉을 예언합니다.
진언자는 무당과 비숫하게 주문도 외우고 마법도 사용해서 예언하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에 충실한 사람들은 내일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갈 뿐입니다.
현재가 선물입니다. 내일은 하나님께 속한 시간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다 입니다.
세번째는 신접자, 박수, 초혼자로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는 자들을 말한다고 봅니다.
사람은 죽으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올라가거나 음부로 내려갑니다. 이것을 중간상태라고 합니다.
지상을 떠돌거나 사람들에게 들어가 귀신들림을 일으키는 것은 죽은 자의 영혼이 아닙니다.
사단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귀신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심히 제사드리는 이유는 살아생전 불효한 것때문입니다.
죽어서 효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화가 미칠까봐, 자기 욕심으로 그렇게 합니다.
이런 자들은 용납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까이에 두면 본받기때문에 제하여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명령하시는 것은 완전하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는 명령을 듣습니다.
이것은 아주 강한 명령의 형태로 주어졌습니다.
적어도 이런 가증한 일들에 대하여는 추호라도 용납하거나 본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이라는 신전의식(CORAMDEO)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나사이에 아무것도 비집고 들어 올 수없게 착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언제라도 넘어집니다.
며칠간 묵상을 게을리했더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말씀의 도전앞에 무릎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