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도 흠도 없는 어린양 예수
작성자명 [이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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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3.07
큐티 斷想
일주일간 장염으로 회사도 결근하고
말씀속에서 쉴 수 있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오늘 말씀 14절에 주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하시는데
2장13절에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 점과 흠이라 했습니다.
점도 흠도 없으신 예수님은 낮의 연락을 이 땅에서 누리지 않으셨습니다.
부귀 영화 권세가 낮의 연락의 정점인 그 땅의 왕을 삼고자 했으나 피하여 도망하셨습니다.
분명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어디서 오셨는지
또 어디로 가셔야 하는지 목적 있는 인생이셨으므로
잠깐의 연락을 즐기고 그것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시종일간 십자가 삼일의 죽음을 목적으로 그 삶을 걸어가셨습니다.
한두달에 한번씩은 출장을 가는 국외의 한 도시가 있습니다.
요번 출장에는 그 곳에 호텔이 아닌 한 거처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아예 그곳에 서울의 나의 거처를 옮기면 어떠냐는 사장님의 말씀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곳의 거처는 이곳보다 훨씬 더 좋은 환경의 거처인데
왜 나는 그곳에 나의 거처 삼기를 싫어하는지를.
그것은 아주 단순한 결론이었습니다.
난 거기서 계속 살지는 않을거니까.
기거하는 날짜가 국내에 더 적어진다 하더라도.
그 곳 보다 이곳이 더 열악한 환경이라더라도
그 곳은 그저 내가 잠시 거할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 나의 책들과 음반과
나의 기준에 소중한것들을 옮기고 싶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 33년을 기거 하시면서 예수님은 이 땅의 낮의 연락을 하나도 취하지 않으심으로
점도 흠도 없는 어린양으로 산제물이 되셨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12제자에 속하지 않은 바울을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 칭하며
바울서신에도 같은 내용 즉 주 앞에서 점과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
는 말씀에 관해 말했으나 무식한 자들( 진리를 알지 못한자들)과 굳세지 못한자들(진리에 바로
서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하십니다.
말씀에 나 를 섞는 것은 미련 한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인 말씀의 포도주를 진노의 포도주로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에서 성경을 내가 읽는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고 지나가야 한다는
김양재 목사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베드로 후서 두번 째 편지를 끝내며 베드로 사도는
오직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당부합니다.
(한글개역 [엡 3 :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의 말씀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지난해 12월 묵상한 계시록의 말씀처럼 어느 한쪽으로 편중 되지 않고
완전하게 머리되신 그리스도까지 자라
(한글개역 [계 21 :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예수님의 신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성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