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에 대한 박종열님의 글을 읽고.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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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3.07
악플에 대한 박종열님의 글을 읽고
솔직히 많이 화가 났습니다. 한마디로 기가 막혔지요.
그동안 3년 동안 제 글에 수없이 달린 악플을 생각하면 자기 글에 악플 달린 그 심정을 모르는 바가 아닌데
박종열님의 악플에 대한 반응은 너무 과했다는, 아니 너무 독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악플은 실명이든 익명이든 일단 기분이 나쁘지요.
하지만 그 기분나쁜 것도 상대방에 따라 보복을 해줘야하는지,
보복을 해주면 어떤 식으로 보복해줘야하는지 생각지 않고
그냥 기분 나쁜대로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막말로 보복해준다면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해주는 것은 둘째치고 공개적으로 자기 인격에만 흠집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복을 해도 자기 인격에도 공개적으로 점과 흠이 되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스스로 사과할 마음이 생기도록 정식으로 보복을 해줘야 제대로 보복을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논리타당하고 합리적인 근거로 상대방의 헛점을 바로 잡아내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박종열님의 악플에 대한 보복은 말 그대로 단순한 보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타당한 논리도 없고 오로지 익명으로 썼다는 그 하나가 약점이 되어
상대방을 단번에 섬뜩한 느낌이 드는 어두운 악마의 사신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간단한 댓글에 굳이 실명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익명으로 쓰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또 얼마나 심한 악플이길래 그러시나 싶어서 읽어봤더니 악플이 아니라 그냥 의견이었습니다.
자기를 반대하는 의견이면 다 악플입니까?
단지 상대방을 기분나쁘게 할 목적으로, 그리고 그 목적이 재미있어서 인신공격하는 것이 악플이지
자기를 반대하는 그런 의견이 불쾌하다고 다 악플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떤 공동체라도 발전이 있으려면 반대의견은 당연히 다 있어야 것입니다.
더우기 자신이 속한 공동체는 아니지만 자신의 공동체와 다름 없는 같은 하늘나라의 공동체이니
관심이 가는 것 당연하고
따라서 어떤 비판의 소지가 있으면 그 비판 또한 무조건 금할 필요가 없는 것도 당연힌 것이지요.
우리들교회 공동체가 목사님을 예수님보다 더 높이는 분위기는 일찌기 지배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본인들이야 아니라고 하겠지만,
목사님이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 깨달아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목사님의 말씀이 곧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 믿음이 우리들교회 공동체가 하늘같이 떠받드는 목사님의 어록 중에 하나인,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라고 하는 그 어록에도 빗나간 것이라는 것이지요.
목사님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인데
어찌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예수님의 말씀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100% 자신을 거두고 온전히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실 만큼 완전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목사님은 100% 자신을 거두고 온전히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할 만큼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고의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섞어서 불순물도 같이 전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것을 누가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각자 그 입장이 다 다르고
다 다른 그 입장에서 나오는 그 말 또한 다 다르며
또 그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 다르게 말을 해야하는 것인데
어찌 사람이 그 모든 사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처럼
각자 다 다른 그 환경을 살피고 각자 다 다른 그 상황을 살펴서
각자에게 꼭꼭 다 알맞는 그 말씀으로 각자에게 말씀을 들려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각자 다 자기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큐티를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큐티 또한 목사님의 큐티말씀에 똑같이 맞추어 큐티를 해야 하니
자기에게 이르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찌 스스로 감하여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나면 처음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데
그 아버지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어야한다면
어찌 그 말씀이 진정 내 아버지의 말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어찌 그 하나님과 우리가 진정한 부모 자식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는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대신 깨달아서 들려주는 그 말씀을
엄밀히 따지면 진정 내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한 다른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다른 말씀을 스스로 내 아버지의 말씀으로 믿고 듣고 있으니
우리가 어찌 그 다른 말씀에 내 아버지의 말씀이 가지고 계시는 그 권위를 우리 스스로가 부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그러니 우리가 스스로 부여한 그 권위가 진짜 권위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모양은 내 아버지의 진짜 권위를 가지고 있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 속 내용은 진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않는 다른 말씀이 들어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어찌 그 다른 말씀을 들을 때
진심으로 내 마음에 와닿는 진정 내 아버지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겠는지요.
물론 진정 내 마음에 와닿는 말씀도 있을 것입니다.
내 환경 내 상황에 맞는 말씀이라면 굳이 내 아버지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다 그 말씀에 공감하게 되어있지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 맞는 말씀이라도 특별한 내 환경, 내 상황에는 맞지 않는 말씀이라면
우리는 그 말씀이 진심으로는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는 일찌기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예스 하도록 배웠습니다. 노 하면 불법인 것이지요.
그러나 진정 내 아버지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식에게 어떤 대답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다른 사람이 대신 깨달아 들려주는 그 말씀이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그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진심으로는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런 말씀에도 무조건 예스 라고 대답해야할까요?
아니면 진심으로 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와닿지 않는 그 마음을 가지고 노 라고 대답을 해야할까요?
우리는 또한 일찌기 어떤 경우에도 항상 정직해야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예스하지 못하는 그 예스 가 정직한 대답일까요?
아니면 진심에 따라 마음이 와닿지 않는대로 노 하는 것이 정직한 대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