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이라는 목자의 무거운 짐
작성자명 [박종열]
댓글 0
날짜 2009.03.04
2009-03-04(수) 베드로후서 2:10-22 ‘처방이라는 목자의 무거운 짐’
지난 주 토요일, 음식점에서 드린 마지막 목장 예배에서
한 지체가, 눈물로 시부모와의 갈등을 오픈했을 때
그 마음을 체휼한 모든 지체가 자기 일처럼 달려들어
각자의 경험과 세상 지식에 근거한 처방들을 쏟아냈습니다.
목자인 나도 한 마디 하긴 해야겠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무슨 말로 위로하고 권면해야 할 지 답이 너무 뻔해서
그리고 그런 말들은 이미 목장에서 여러 번 해주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는 일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내가 해준 말은
‘아기도 어머니께서 봐주고 계시니, 둘이 찜질방을 가든
노래방에 가서 악을 쓰든 스트레스 풀고 들어가세요.
맥주도 한 캔씩 곁들이며...’
거룩한 목장 예배에서 그런 처방을 하다니...
모두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내 말이 씨가 되어 노래방에서 뒷풀이를 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정작 말을 꺼낸 목자는, 생업 때문에 그 곳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일은 전화로 전해 들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중에 스트레스 풀고 들어갔다고...
맥주를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그 일이 생각난 것은
그 때 내가 내린 처방이 옳았는지 마음에 부담이 되어
며칠을, 말씀 안에서 해석해보려고 끙끙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내린 처방의 근거는 자유함이었습니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 지체에게 자유함을 주고 싶었고
나도, 거룩이라는 단어로 어깨를 누르는
처방이라는 목자의 무거운 짐을 잠시 벗고
세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인본적 자유함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맥주를 한 캔 마셨는지
마셨다면 자유함으로 마셨는지
그리고 잠시라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고 말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처방을 내리고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 이유를 오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내 처방으로
그들이 잠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처방은 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처방은 물론, 차선책도 아닐뿐더러
악한 처방이었다는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술은 자유함으로 마시는 거라는 사단의 속삼임에 넘어가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면서도 그토록 오랜 세월
멸망의 종으로 살았던 음주의 삶이 있었기에
그런 처방이 부지불식간에 나온 것임이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음주가 주는 말초적 달콤함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그런 처방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의 삶에서 벗어났다고 외쳐왔지만
그 질긴 종의 근성이, 아직도 내 육과 영을
지배하고 있음이 깨달아졌기 때문입니다.
멸망의 종이 되기를 자처하여
이기는 처방이 아닌 지는 처방을 내림으로
멸망의 왕, 사단에게 승리를 안겨준 악한 목자임이 깨달아짐에
입술을 깨물면서
인본주의와 세상적 가치관에 맞서야할 목자로서
스스로 멸망의 종이 되어
사단에게 지는 길로, 지체들을 인도한 악한 죄를 회개합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사백 년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겠다는
아버지 약속만 붙들고 가는 선한 목자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