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 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두 증인이 부활한 후 큰 지진이 나서
소돔이라고도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성의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은것을 보고
남은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계:11-13 )
막내인 내가 고1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남겨진 1남 2녀의 양육과 생계를 책임 지셔야 했던
'외로움의 아이콘'인 청상 과부가 되신울 엄마~~~♡
울 엄마는 생계를 책임 지시느라,
오빠는 정수 직업 훈련원에서,
언니는 간호학과 대학 생활을 보내느라 바빠서
혼자서 외롭게 지낸 시간들이 많았다.
그때를 돌아보면 빛이 없는 냉랭한 분위기로
내 기억에 자리 잡고 있지만...
아버지의 '소천의 부재'이후에
대상 상실에서 대리 만족으로 다가온
고1때 친척 가게에서 알게 된,
군 복무중였던6살 연상전 남편을 통해서
예수님과 이성에 대한 궁금증이묘하게 겹치면서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대학,청년부 수련회와
전 남편의 직장였던 '이랜드'를 통해
기존의 기복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지,정,의가 조화로운 기독교 문화를 접했고
일년에 두 번 주최하는휴가같은
직원, 및가족 수련회를 통해서
예수님을 뜨겁게 감정적으로 만났고,
전 남편과 예수님을 육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의지할 대상으로 삼았다.
살았으나 죽은 사데 교회 같았던 나는
권위적이고 이중적인 전 남편과 세 딸들의
'중재자'로살아내다가 감당 못할 충격에서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두 딸들은 이른 나이에 혼인을 하게 되었고,
홀로 남은 막내 셋째 딸(중3)을
전 남편이자 딸들의 아빠에게 독박 양육을 넘기고
세 딸들에게는 사전 통보된 '가출'을 하고
세 딸들과는 매일 연락하며 지내면서도
'나는 소중하니깐'를 외치며
찌질하고 이기적으로 합리화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나와 내 딸들은 '피해자'다
자기 연민과 동정 사이에서 헤매이며
자동차와 세상의 위로를 찾아서
'드라이브'하는 인생으로 죄 가운데로 빠졌다...
별거로 막내 딸을 성년까지 돌보지 못했지만
그런 중에도 막내딸은
주님의 날개 아래 품어주셔서 요동치 않고
학생의 때를 잘 살아주었고
기숙사가 있는 미션스쿨(안산 동산고)로
인도하셔서사춘기때 갈등이 더욱 고조 됐던
두 딸들과는 다른 환경,
아빠와 분리되는 환경으로 인도하셔서,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었으나 나의 세속사가 구속사가 된
하나님의 살피심으로 이끄신 것을 감사합니다...
나와 엄마의 삶을 돌아 보게 되니...
내가 결혼으로 독립이 될때까지
풍족하지는 않았으나 입히고 먹이고
가르쳐 준것이 감사함으로 와 닿았고
울 엄마♡에게도 '감사합니다' 라고고백할 수 있었다...
이혼과 재혼 사이에서
고난 중에 전에 속했던 공동체를 떠났지만,
강권적인 은혜로 우리들교회로 불러주셔서
회복과 치유와 위로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교회를 넘어뜨리고생명을 빼앗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허락하신
제한적인 시간과일시적인 패배일 뿐
결코최종적인 결과는 아니다'라는
본문 해설로 위로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와 말씀과 적용으로내 죄만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팔복을 구하며'두 증인'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구합니다...
자기애의 욕심과 이기심과 정욕대로한 무늬만 신결혼인
전 결혼과 이혼과 불신재혼으로
아프리카 선교보다 더 힘들다는
저는 재혼, 지금의 연하인 남편은 초혼으로
둘 사이에 자녀도 없는 우리 부부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마리아같은 저를 너는 내것이라,불러주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