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정환 목사님의 새벽큐티설교를 들으며 깜짝 놀라며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039금수저#039관련해서 말입니다.
모태 가난인 친정에서 비교의식으로 시기 질투하며 자랐고, #039너는 부자다#039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친정이 가난하다는 비밀을 품고 포장하며 살았기에 열등감에 우울했고 자유롭고 높게 날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환경을 탓하며 자살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직장동료가 공부하는 것에 경쟁심리를 느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였고, 공부로 성공해서 높아지고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한 친정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되는 꿈을 품으며, 나와 우리 가족이 살길은 오직 공부라고 생각에 공부라는 썩은 동아줄에 밤이 새도록 피곤한 줄도 모르고 내 생명 내놓고 필사적으로 매달렸었습니다.
우리들교회에 와서 열등감과 교만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것을 배워 알게 되었지만, 저도 제가 #039금수저#039일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교 오기 전에도 교만한 사람들을 미워하며 #039나는#039 겸손히 행하려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하며 살려 했고,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환경이 겸손하니 겸손 할 수밖에 없던 것임을 알게 되어 더욱 겸손 할 수밖에 없었는데, 정목사님께 하셨다는 말씀이 꼭 제게 #039겉모습은 겸손하지만 금수저라고#039 말씀하신 것 같아 어느 부분 인정이 되면서도 의아해하고 이해 못한 저에게, 사모님의 #039당신 아직 몰랐어? 당신 금수저야. 의식이 금수저야. 누구 말도 듣기 싫어하잖아. 가족들이 모이면 다 당신 눈치보잖아.#039 하시는 말씀에 또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살면서 제 자신이 구체적으로 내가 금.은동.흙수저 인지로 따져본 적은 없었지만 금수저 얘기 들으며, 무의식이 #039나는 흙수저이지.#039했는데 설명 듣고 나니 #039나는 금수저입니다.#039고백하게 되네요.
올 해 초 #039책임#039이라는 설교가 두 번째로 주일설교 말씀으로 선포되고, 그와 관련해서 강단에서 처음으로 간증을 하게 되기 전, 즉 4년전 처음으로 #039책임#039이라는 설교가 주일설교 말씀으로 선포된 후 먹튀 했던 것에 용서를 구하고 차별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도 온전히 회개하지 못했었기에 은혜이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과 삶으로 살지 못할 것 같은, 책임지지 못 할 것 같은 눌림으로 #039설마 내 얼굴을 아실까? 모르실꺼야#039라고 합리화 하며, 목사님께 제가 그 먹튀라고, 교사로서 학생들을 책임지는 사랑하라고 설교에 언급해주시며 양육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리지 못하고 여전한 방식으로 먹튀를 했었습니다.
언니가 교통사고가 나서 차는 폐차되고 차문을 뜯어 언니를 빼냈고 유리로 온 몸이 뒤엎여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소식에 통곡하며, 돈도 없고 빽도 없어 어렸을 때 잠시 나간 주일학교에서 들은 하나님께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뒤에서 몰래 잡았던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039하나님 우리 언니 살려주세요#039하고 삼위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한 기도 조차도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언니를 육적으로 살려주신 것 뿐 아니라 우리들교회 집사님을 같은 병실로 보내주셔서 복음을 듣게 하심으로 영적으로도 살려주셨습니다. 보너스로 저와 엄마 아빠도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목사님을 통해 이렇게 제가 요청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셨는데 환경이 풀리니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으며 내 힘으로 세상의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변하지 않은 가치관으로 말씀이 은혜가 되고 좋기는 하지만 바쁜 일에 쫓겨 사는 것도 힘든데 십자가 지라고 하는 말씀에 눌리고 슬퍼 우울했던 것은 그 이면에 하나님 말씀, 십자가 복음을 듣기 싫어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속고 남도 속이는 믿음으로 말씀 듣고 내 죄를 보고 회개하여 겸손해진 모양새를 하고 분주하게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를 쫓아다니고 각종 양육을 받았으며 목사님은 나를 영적으로 낳아주신 영적 엄마이다 했지만, 그런 목사님께 먹튀한 것에 대한 정죄감과 죄책감과 망상 등으로 힘들어하며 사모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에서 주변만 멤도는 꼴을 하다가 제작년인가에 오전 수요예배 후 용기(?)를 내어 성도들에게 인사하시는 목사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때도 제가 그 먹튀라는 말씀은 안드리고 당시 목장을 안나가고 계시던 엄마만 고발(?)하는 핑계를 들고 앞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이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저의 팔을 가볍게 툭 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잘 들어~!'
수시로 그 말씀을 생각하긴 했지만,
주일설교로 계시록 설교를 듣고 7-8월 예레미야 심판의 말씀을 들으며 우측 고관절 인공관절 재수술을 받고 남편과 시댁 식구와의 깨질대로 깨어진 관계로 인해 육적 정신적 영적으로 황폐하고 갇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지난 날들을, 특히 우리들교회에서 보낸 7년을 되돌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환자의 때이긴 하나 그 동안 포악을 떨었던 것도 있고 자존심이 하늘에 닿아 있어 #039이제와서 네가 아쉬우니 부탁하냐#039고 비아냥 거리지는 않을까 하여 자존심 상해 죽을 것 같음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039내가 손해 보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굽히지 않을거야#039 하며 살았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뜻대로 되야 했고, 누구의 말도 듣기 싫어하며, 결국 내 마음대로 하며 살았던 내 삶의 결론인 지금을 예레미야와 계시록 말씀으로 해석 받고 있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7여년 간의 양육과 처방들을 떠올리며 그 때라도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그 때라도 돌이키고 질서에 순종 했어야 했는데 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 눈물이 주루룩 흐르지만 아무것도 토달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부러 말씀을 잊으려 해보기도 하고 안보기도 하며 생색내고 옳고 그름으로 따져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기억나는 말씀들이 있게 하셔서 몸을 돌이켜 뒤를 돌아보게 하심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는 아닌지 생각합니다. 심판을 겪고 성경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니 성경의 처음인 말씀인 창세기를 정독하고 싶어져 목사님의 #039보시기에 좋았더라#039를 읽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져야 성경 전체가 믿어진다 하셨어서 1장 1절만 읽고 또 읽었더니 말씀이 연결되고 그 동안 탐심으로 세운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을 향해 닫힌 문을 열어주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 사데교회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는 말씀을 두 번이나 하셨다 합니다. 목사님의 #039잘 들어~#039이 떠올라 올 초부터 맨 앞자리에서 설교를 들으면서도, 두 귀가 멀쩡히 있음에도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저와 누구의 말도 잘 듣지 않는 나의 교만으로 포로의 때를 살고 있으면서도 내 죄를, 내 삶의 결론임을 100% 인정 못하여 온전한 회개에 이르지 평안함과 요동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저를 내어놓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질기고 질기게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저처럼(?) 된다는 것을 기록(?)합니다.ㅎ
번외로 이번에 알게 된 재미있는 내용을 공유합니다.
게일 립링거 박사가 영어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의 내장된 사전 기능을 이용해서 성경의 단어들의 의미를 연구하던 중에 #039각 개별 글자들이 일관되게 단어들에 글자 자체의 고유 의미를 부여함#039을 주목하게 되었답니다. 이러한 글자의 의미들은 서로 결합되어 한 단어의 전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아냈답니다. 이 후 다른 학자들도 연구를 시작 했는데 한 학자는 #039글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단어가 결코 우연히 그냥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039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읽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기 종류대로, 각 사람, 각각, 개인 구원 등과 하나님이 생각으로도 천지창조를 하실 수 있었지만 #039말씀으로#039 창조하셨다는 것이 연상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역할은 각각 다르다. 역할이 다른 것 뿐이지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각기 다른 역할을 하는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몸을 이루는 것이 교회이다. 그런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읽고 듣는다. 하나님이 뜻하신 바가 있어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 글자들을 조합하여 단어를 만드시고 문장을 만드시고 단락을 만드셨다. 성경 말씀의 그 어떤 단어도 결코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숨겨진 하나님의 뜻) 그 뜻을 바르게 알게 해주시는 가르침을 잘 받고 큐티 할 때도 한 글자도 허투로 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라고 하셨는데 지키는 데까지 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