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1:1-14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갈대 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같이 되리라.
다윗의 집이여 너희는 아침마다 정의롭게 판결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자의 손에서 건지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의 악행 때문에 내 분노가 불같이 일어나서 사르리니 능히 끌 자가 없으리라.
내가 도와주어야 할 약자는 누구입니까?
제가 일하는 곳에는 실습생들이 임상 실습을 나옵니다.
잘 배우고 겸손한 태도의 실습생은 가르치기가 쉽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지만
실습에 관심이 없거나 혹은 거만해 보이는 실습생들은 저도 모르게 잘 가르쳐 주고 싶지 않습니다.
어제는 키가 크고 잘생겼는데 자기 외모를 너무 믿어서인지 거만해 보이는 한 남학생과 긴장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잘 웃지 않고 새침한 여학생이 실습을 나왔습니다.
동문 후배들이었지만 신경 쓰기 싫었고 속으로 앙 재수 없어, 알아서들 해amprsquo를 외치며 모르쇠로 일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모든 일에는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다고 하십니다.
나의 악하고 교만한 성읍을 향한 하나님의 화를 깨닫고 거기서 나와 겸손히 수치를 잘 당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내 옆에 학대받고 착취당하는 약자를 건져주는 것이 바로 내 가정과 공동체와 나라가 하나님의 불같은 분노에서 건짐 받고 견고히 서는 길이라고 하십니다.
실습생이 잘 배우든 못 배우든 당돌하든 겸손하든 실습생의 위치는 어쩌면 약자입니다.
저도 실습생이었고 임상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치료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저 보고 배운 정도였고 저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쳤던 임상 선생님은 나도 없었으니 너도 고생해라amprsquo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실습생들보다 제가 강자인 것은 그래도 그들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서 임상에 나온 이후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을 힘입어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문 후배인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치료사의 본을 보여주시며 자기 집까지 초대해 주셨던 한 임상 선생님과 당돌했던 저와 씨름해 주시던 한 임상 선생님도 생각이 나네요.
제가 은혜를 잊고서 저에게 도움을 준 임상 선생님이 없었다고 했네요...
게다가 저는 배울 점이 많은 동료들과 일하며 늘 배우는 자리에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받은 은혜를 생각해 보고 약자들을 도우라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라라 랜드]가 생각났습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게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서로의 꿈을 존중하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럼에도 해피 엔딩인 것은 그들의 5년 후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각자의 현실에서 늘 생각하고 말하고 꿈꾸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실습생들도 [라라 랜드]의 주인공들처럼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그들의 5년 후는 다를 것입니다.
그들의 꿈을 따라 좋은 치료사가 되고 연구도 하고 유학도 가고 어쩌면 교수가 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들의 꿈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며 그들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적용으로공부에 관심이 없고 잘 배우지 않는 실습생들은 재미있게 가르쳐 주겠습니다. 편견을 갖지 않고 거만한 실습생을 기쁨으로 인내하겠습니다.
후기
두 실습생은 전 날 긴장을 해서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은 웃기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