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를 드러내는 환경(예레미야 13:20-27)
2017-7-31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amprsquo(예레미야 13:20-27)
■ 질문하기: 왜, 수치를 드러내시는가?(26)
■ 묵상하기
○ 21절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몇 년 전 독방을 쓰는 단장의 자리에서 복사기 옆 말석으로 떨어진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은 외부에서 온 세상 권력자 상관이, 정부에서 내려온 나를 건드리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윗질서를 무시한 전적으로 나의 교만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지만, 막상 말석에 떨어지고 나니 견디기 힘들었다. 아침 출근시간이 감옥행이었고 퇴근시간이 해방 시간이었다. 가정이 직장보다 좋은 곳인지를 절감했다. 힘이 없어지니 술 마시자는 사람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 25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내가 하나님을 만난 것은 20대 중반 미국 연수 때 한인교회가 계기였다. 어릴 때 학교 주변의 유일한 현대식 건물인 교회 십자가를 그려서 입상도 했었지만 정식으로 교회 문을 넘어본 것이 미국 연수였고 독실한 불교신자인 아내에게 교회를 다녀보라고 권했다. 직장 승진 때마다 새벽기도를 했지만 승진하고 나면 잊어버렸고 하나님보다 직장의 네트워크를 신뢰하고 음주문화에 적극 동참했다. 아내는 젊은 시절에 큐티 모임을 알게 되고 나에게 열심히 큐티책을 공급했지만 읽고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 26절 그러므로 네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나는 어릴 때부터 수치 당하는 것을 매우 싫었다. 시골 농촌에서 이맘때쯤 태풍시즌에 낙과를 얻어오라고 한다. 보리 짚단과 물물교환을 위해 짚단을 메고 풋사과를 얻으러 가는 길에 과수원 앞집에 사는 같은 학년 여학생을 만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도시 전학 와서는 어머니가 구해 온 헌 교복을 억지로 줄여서 입고 다니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공직에서도 일찍 초급 간부가 되어 나름 대접 받았지만 가정 경제, 학력 등 감추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런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말석은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었는데, 바로 이때에 나의 약점을 잘 아시는 주님은 가장 적절한 시기에 우리들교회를 만나게 하셨다. 아내는 집 가까운 곳에 우리들교회가 생겼으니 가자고 했다. 우리들교회에 오니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강도 높은 고난과 수치를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특별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을 알게 됐다.
○ 27절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냐
양육을 받으면서 수치를 드러내는 방법을 배웠다. 백화점같은 나의 수치를 그동안 내 속에만 머무르게 했기 때문에 교회에만 오면 죄책감으로 늘 우울했던 것이다. 인간의 최고의 감정이 회개라고 하는데 그 회개의 시작은 수치를 드러내는 데 있었다. 일방향 기복으로 만나던 하나님을 나의 회개 문제로 만나게 되니 하나님과 쌍방향 소통수단이 되고 조금 당당한 감정도 생겼다. 이것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방법을 모르고 여전히 다른 길(과도한 음주 등)을 가고 있었다면 아마도 나의 수치를 강제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올 수도 있었을 것이고, 수치심에 매우 약한 내가 나의 수치를 스스로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인에 의해 드러나는 상황이 되었다면 극단적으로 피할 방법을 찾았을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수치를 드러내는 환경에 속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앞으로도 내게 수치스러운 사건이 없을 것이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수치에 약한 내가 수치를 드러내는 공동체에 반드시 붙어 있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가족에게 나의 수치를 드러내기가 가장 힘든 것인데 우리들공동체에 온 가족이 다 함께 있으면서 같은 말씀을 듣고 가는 자체가 나의 만일의 수치를 당하는 사건에 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나의 최대 약점을 잘 아시고 매일 회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정결을 일상화하는 과정을 통해 수치를 드러내는 사건 자체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막아주실 것을 믿는다.
■ 적용하기: 매일 수치를 묵상하고 드러내는 환경에 묶여있는 것이 나의 구원과 이 땅의 삶을 정결케 하는 것임을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