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목사님이 설교 말씀중에 본문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중요한 말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오늘 큐티 본문을 보니 #039문안하라#039가 5번이 나오는데
문득 2주 전에 남동생을 만난 것이 떠올랐습니다.
남동생은 4년전에 이혼하고 양육권도 뺏긴채 혼자서 살고 있습니다.
본인의 잘못이 컸기에 어디에서도 하소연도 못하고 맘 고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벌써 나이가 50인데 변변한 직장도 없다가 축산 도매업 영업을 하면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계속 남동생의 구원을 생각했지만 겉으로만 남동생 구원을 기도제목으로 올리고 전도잔치에
대상자로 선정했습니다.
만나면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까 하는 부담감과 왠지 그래도 뭔가 도와주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에 정작 만나기를 꺼려했습니다.
게다가제가 요즘 이직한 직장에서 광야훈련을 제대로 받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다보니
만나는 마음마저도 희미해져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힘들어지니 동생이 참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는것이 체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여유있게 살때는 그저 불쌍하고 안된 생각만 가지고 있었고, 어쩌다 만나도 영혼 없는 말로
다시 합쳐야지, 애들도 생각해야지 던진 말이 동생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생각을 하니
제 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오랫만에 만난 동생은 얼굴은 좀 부어 있었지만 그래도 여유를 좀 찾은 모습이었습니다.
교회 얘기를 하니 여전히 거부감을 보이고 '오늘은 교회 얘기는 하지 맙시다' 라고 막아섰지만
교회가 아닌 목장 이야기를 하고 '나는 네 입장을 잘 이해는 못하지만 우리들교회 목장엘 가면
너만큼 아니 더 많은 고난도 망설임없이 얘기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 라고
얘길 해주니 많이 호감이 가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나온 김에 6.18일 우리 교회로 초대를 했더니 그날 산악회 행사가 있다면서 거절은
했지만 예전처럼 완강한 반대는 없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성욕은 어떻게 푸는지,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남자 둘이 모여서
술 한잔에 사는 얘기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고나서 일어서는데 제 팔짱을 끼면서
'형한테 처음 팔짱끼어보는 건데 좋다' 하는데 너무나 무심했던 제 자신이 보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교회를 다닌지 10년이 넘었고 우리들교회에 등록한지 2년 3개월, 일대일 양육에서 예목1까지
받았음에도 마음은 여전히 낮아지지 않고 믿지 않는 남동생의 구원의 소망도 없이 그냥 형제로서
형식적으로 대했음이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사실 동생은 저보다 인물도 잘생기고, 성격도 좋아서 이혼의 고난만 없었다면 세상적으로는
저보다 더 잘 나갔을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내 삶의 결론이듯 동생의 지금 환경과 고난도 다 결론이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동생은
여전히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전처에 대한 원망이 함께 있습니다.
산악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잠시의 기쁨과 어려움을 이길 수는 있겠지만 세상의 사귐은 항상
목적이 있고 이익을 따라 가기에 그 이익이 없어지면 헌신짝 처럼 버려지는 냉정한 곳임을
얘기하고 교회에서 믿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평생 같이 갈수 있는 영원한 친구들이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10월에 전도 축제가 있으니 그때는 꼭 오라고 했더니 씩 웃는 폼이 전혀 마음이 없지는 않은듯 합니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이 도대체 이해가 안가고 지금 직장 고난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착각이 있었지만
직장 고난을 통해 남동생을 조금이나마 체휼하고 가니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라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세상의 형제로 50년을 살았는데 앞으로의 인생은 믿음의 동반자로서 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적용하기)
1. 남동생에게 큐티인을 전하고 그 안에 있는 지체들의 간증을 꼭 읽도록 권하겠습니다.
2. 모태신앙이지만 하나님을 떠나 있는 처제에게 거부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 카톡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