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공동체
고전 16:1~12
오늘 말씀에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해서 나오는데
저는 헌금 이야기가 나오면 회개할 것이 생각납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를 성도를 판단하는 연보로 삼았다가
저 자신이 지옥을 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 직분을 받아 섬기고 있던 어떤 분이 자신을 꾸미고
아이들의 외모를 가꾸는데는 아낌없이 쓰는 것을곁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헌금은 제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 헌금봉투에 챙겨 넣어주는 것보다도
더 적은 금액을 하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것이사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직분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섬긴다고 앞에 나가고 있는 것인지가 판단이 되어
그 사람의 어떤 말도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될 헌금을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는 도구로 삼았기에
결국은 나의 헌금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고 나의의로움을 드러내는 도구로 드린 것임이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내가 보았던 그 순간이 그 사람의 헌금생활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인데
그 전후사정에는 관심도 없이 하나를 보고 전체를 판단하여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지는 못할망정
스스로가 은혜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가는 것도 머무는 것도 다 주께서 허락하셔야만 하는 것임을 기억하며
연약해보이는 디모데 같은 그분에 대해더욱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우리 가운데 있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연약해 보이는 디모데도 바울 사도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사소한 하나의 문제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여
내가 은혜에서 떨어졌던 시간이 있었음을 교훈으로 삼고
헌금은 오직 나의 믿음을 판단하는 도구로만 삼을 것을결단합니다.
저희는 남편이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수입이 일정치 않은데
저는 매달 첫날 남편의 통장에서 일정금액을 제 통장으로 생활비로 이체하고 그 돈으로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의 전체의 수입의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고 생활비의 십일조만 하고 있는데
저와 남편의 믿음이 자라서 우리 가정의 온전한 십일조를 하게 되기를 기도하며 가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공동체를 허락하셔서많은 부분에서 투명하게 검증받고 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