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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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2.09
오래전
교회에서 중요한 일로 공동의회를 열었을 때입니다
그 때
당회의 결정에
모두가 예 하는데
남편만큼은 노 를 했습니다
신의와 충정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남편이 모두가 다 찬성하는데 자기만의
외로운 역류의 배를 타고 노저어 가는 것이
어쩜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한 인격의 손상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그 투쟁의 휴우증으로 영혼까지 잃어 버릴 수 있는
통렬한 위기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오랜 세월 지나오면서 배우게 되었답니다
그것이
왜 그른 것인지
왜 찬성을 하면 안되는 것인지
두 시간 정도 소모하며 분노의 의사를 분출하였던
남편의 세세한 모습
하나 하나를 내 눈으로 똑바로 보면서 내가 결심한 것이 있다면
만일에
만일에
내가 교육을 시키는 현장에 머물게 된다면
모두가 예스 할 때라도
그것이 옳지않으면 노 라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을 키워내야겠다는 별난 각오가 생길정도였습니다
그 날
공동의회가 끝나고 나서도
당회원들과 따로 또 만나고 오느라
나보다 훨씬 늦게 집으로 돌아 온 남편이
신발장 문을 열면서 던진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지혜가 있어
분별이 있어
싸워봤지만 역시
자신도 다 일반에
속한 자 중의 하나가 되여
허무의 나락끝에 서서 한 말이였습니다
여보 미안하다
그런데 난 도대체 무엇을 회개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여보
모두가 당신 곁을 떠났어도
나는 당신 곁에 남아있을뿐만이 아니라
주님께서는 더 더욱 당신 곁에 함께 있어요
그리 답한 이후
떠올린 것이 있다면 희망 이라는 그림이였습니다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가운데
어둠속에 한 줄만 남아있는 바이올린을
버리지 않고 그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있는
한 소녀가 왜 그리 내 가슴을 요동시키던지 그게 그림이 아니더라고요
남편이 내뱉는 허무와 무상의 한숨
남편의 눈 길이 너무나 먼 곳을 향해 있을 때마다
저 남자가 바라는 이상은 이 지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으로
결국은 나도 저 남자의 이상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였습니다
특히
뱃속에서부터
자신의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예수에게 족쇄가 채워져 여지껏 예수로인해
참음과 견딤의 삶을 살아 온 보상이
허무와 무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 허무와 무상의 강도는 정말 이 세상 어느 힘보다 강한 것이였습니다
그 강함이 어느정도였냐면
그 신의와 충정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남편의 입에서조차 더이상 예수를 쫓아가지 않겠다고 말 할 정도였답니다
그 때 그 순간 내 영혼에
가해졌던 치명적인 먹먹함은
정말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허나 내 안에 살아서 활활 타오르는 영이
그에게 해 준 말은 의외로 부드러운 말이였답니다
만일에 당신이 예수를 쫓지 않겠다하여
예수가 당신을 버린다면 나도 그런 예수는 믿지 않겠어요
그 답변 이후
그와 내가 서로
배우는게 있다면
어릴적부터 배운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시킬려면
우리들의 배움과 믿음 역시 중단해서는 안되다는 것입니다
노래중의 노래인 아가서를 쓴 저자가
허무중의 허무인 전도서를 썼다는게 믿겨지지 않듯
예수를 그렇게도 붙잡고 살았던 남편이
예수로 인해 그렇게도 깊고 깊은 허무와 무상의 물결에 싸여
십오년 가까이 살았다는 것 역시 믿겨지지 않지만
그것은 사실이랍니다
솔로몬이 스스로를
시험의 대상으로 삼아
온갖 것을 두루 섭렵한 후
내 뱉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은 무상의 말은
마치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경험한 이후
온 인류가 빠진 허무와 무상의 물결과 다를 바 없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순간에
더욱 더 우리가 믿는 바 도를
굳게 잡고 나가는 것만이 모든
잊혀져가는 존재들을 영원히 영롱하게 비치는
잊을 수 없는 존재의 별들로 재 창조되어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봅니다
남편이 겪은 바
허무와 무상의 강도
높은 시험대 위에서도
진리로 검증되어져 나온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를 맘껏 찬양하는 사람으로
택해 주신 하늘의 하나님 살아계시니 무엇이 더 허무할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