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따지는 것 자체가...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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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2.07
교훈이라는 닉네임으로 어떤 분이 다시 또 제 글이 아래와 같은 댓글을 주셨습니다.
사실, 반갑네요. 제 글에 진지한 내용으로 변론을 해오시는 분이 드문 편인데...
그래서 중요한 내용이 될 것 같아 같이 나누기를 원합니다.
교훈님의 댓글
류혜숙님의 글은 잘 보았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든 의문점을 얘기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우리가 본다 보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요한복음의 소경에 관한 말씀으로 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묵상을 할때,
또 본다는 말을 쓸때,
말씀안에 있는 나를 비춰보고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님은
마치 말씀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있는,
서로간을 어떻게 받고 이해하느냐의 관계가
본다 보지 못한다의 기준으로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말씀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여겼고,
다른 기준은 없으며
그렇지 않으면 절대적 옳고 그름을 가릴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님은 오히려 가변적인, 상대편 인간의 모습속에서 자기 자신을 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위의 이라 님은 그것을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로 비교하여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말씀보다 관계를 더 중심에 두고
자기자신을 바라보라는 님의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말씀으로 자기를 세운뒤 관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올바른 수순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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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님, 이렇게 진지한 댓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속에 흐릿한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고
보다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본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앞에 어떤 현상이 있을 때 이야기지
어떤 아무 현상도 없을 때는 본다, 보지 못한다는 말이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니
어떤 현상도 가지고 있지 않는 분이신가 봅니다.
그러나 그분은 실제로 계신 분이니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관건입니다.
먼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현상으로도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면 우리가 그분을 볼 수 없고
그분 또한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실제로 없는 존재가 되는 것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실제로 살아계시는 그분이
이 세상에 실제로 우리에게는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살아계신 그분으로서는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 자체가
그분 자신에게는 대단한 굴욕이라는 것입니다.
솔직히 살아있는 존재가 살아있는 것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이 세상에 슬프고 외로운 일이 또 있을까요?
더우기 이 세상은 하나님 그 자신이 만든 세상이며
그러므로 하나님 그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인데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그 주인께서 이 세상에 납시기를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당연히 그 현상을 가지고 납시어야 할텐데
도대체 어떤 현상을 가지고 납시면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
참으로 그분으로서는 고민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그 성질에 맞춰서 그 현상을 가지고 자신을 나타낸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하나님 자신을 너무나 오해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어떤 현상에 맞추어야
가장 하나님다운 현상이 될 수 있을까요?
언젠가 해가 지고 어두워진 창가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나님이 내 눈앞에 좀 나타나주셨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고 마음만 간절하던 중에 든 생각이
하나님이 작은 새로 나타나면 나는 그 새를 하나님으로 볼 수 있을까?
하나님이 작은 새로 나타나도 나는 분명 그 새를 하나님으로 보지 못하고 작은 존재로 흘려버리겠지,
하나님은 크고 웅장하시니
그에 걸맞게 사자, 독수리, 곰, 악어, 번개, 우박 등등 다 합쳐서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눈앞에 그려지는 그 모습은 어떤 한 모습도 아니고 여러가지 합쳐진 섬뜩하게 괴이한 괴물 같은 형상이라
하나님이 그 모습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이 무섭다고 다 달아나버리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역시 하나님은 그 어떤 현상으로도 우리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면
그 모습 하나로만 자기 속에 하나님을 고정시킬 것이 뻔하고
그 모습을 벗어나 다른 어떤 모습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이
우리가 알아보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을 보면 각각 그 이미지가 다르고 다양합니다.
각각 다 다른 사람들도 다르지만
같은 한 사람이라도 그 입은 옷이나, 지위, 재물, 등등 그 상황에 따라
그 이미지가 시시각각 수시로 변하는 법인데
하나님이 어떤 현상, 어떤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오셔야
우리 사람들이 가장 하나님을 또 잘 알아볼 수 있을까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어떤 현상, 어떤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오셔야
우리 사람들이 각각 다 다른 그 사람들 중에 다른 어떤 사람으로도 보지 않고
자기 주인으로 바로 그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그 방법 같은 것은 그 주인에게도 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주인은 사람을 만드실 때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안 보고도 그 주인은 그 사람 속을 훤하게 다 꿰뚫어 보신답니다.
그래서 그 속의 움직임 하나만 보고도 살살 그 사람을 자기에게로 끌어당기면
그 사람 아무리 자기 주인을 모른다고 얼굴을 돌리고 도리질을 한다 해도
결국은 다 그 주인에게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군요.
그래서 그 사람, 그 주인이 자기 종으로 만드는 것은
무슨 현상이나 어떤 모습, 뭐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고 시간이 문제라고 하시네요.
그러면 사람이 먼저 신본주의, 인본주의 순서를 따지는 것 자체가 헛된 것이며
하나님이나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사랑의 눈으로 지경을 확장시켜나가는데는
사람이 하나님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하고 따지는 것 자체가
또 말씀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하고 따지는 것 자체가
스스로 사람이 이 세상 주관자가 아닌 이상 너무나 교만한 생각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