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표적으로 삼았던 너 유대인아!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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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2.04
주께서
친히 우리들과 함께
육체의 장막을 치시고 살았던
공생애 시절의 그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 상고해보는 순간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장 높은 곳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부터
가장 광활한 곳으로부터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내 곁에 찾아 오신 분이시기에
나 역시
가장 높은
가장 먼
가장 넓은
가장 깊은 혜안으로
점진적인 시야를 확장시켜나가며
그를 바라 봄에 가장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나는 본다는 착각과 교만과 오만일 것입니다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되이 본다는
그 율법적인 봄의 확신으로 말미암아
정작으로 보아야 할 주님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 표적으로 주신 안식일을
일주일에 한번씩 한번도 거르지 않고 늘 보며
살아왔던 그들이 안식일이란 참 표적인 질병으로부터의
구원이나 치유로인한 참 안식이나 사유함으로인한 평안이나
날이나 절기로부터 자유케하신 진정한 안식의 주되신 주님은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죄때문이였습니다
그 죄의 속성은 본다는 즉 나는 확실히 안다는 교만으로부터 온 죄인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여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한 소경을 표적으로 삼으사 그 눈을 뜨게 하시고
또한 그 소경에게 자신이 인자임을 계시해 주시는 주님!
그러고보면 소경에게 자신이 인자임을 계시해주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소경을 통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게 준 고난들이 내 죄나 내 조상의 죄때문이
아니고 내게 인자되신 주님을 계시해주시려고 그랬다는
그 한 가지를 아는 순간부터 고난은 축복으로 승화 비상하게 되여있습니다
고난 자체도 감당하기 버겨운 것인데
죄책감까지 안고 사는 사람들을 보며 울 주님
얼마나 마음 무거우셨으며 가슴 저미셨으면 그런 말씀을 해주셨을까 싶습니다
누구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는 주님의 의도적인 말씀은
바로 고난 당하는 모든 자들에게 찾아가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 곧 자신을 계시해 주시겠다는 확증인 것입니다
이 한 소경을 사이에 두고
주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계시해
보여줌으로 구원해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너희가 소경이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는 말씀으로 심판받는 이가 있다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이 본다고 자처하는 것은 안식일의 규례가
있는 말씀을 본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곧 모세의 율법을.....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논리적으로
받아 소경이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는 심판의 말씀을 하실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소경은 거울앞에 서서 아무리 쳐다보아도
아무 것도 교정할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으니깐.....
그것을 누가 책잡을 것입니까?
그러나 멀쩡히 뜬 눈으로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에 묻은 그 무엇이나 옷매무새를 깨끗하게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땅히 책잡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수없이 말씀을 보며 읽고 묵상하는 나
그래서 본다고 자처한다면 나는 깨끗해져 있어야 합니다
그게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말씀을 깊이 파고들어가면
주님께서는 본다는 말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네가 본다고 말을 한다면 마땅히 보는 자답게 깨끗하게 살아야지
왜 여전히 더럽게 옷 입고 더러운 얼굴로 살아가고 있느냐는 말씀을
역설적으로 표현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내 더러운 모습을 안다면
차라리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 고백하는게 옳습니다
그리 고백하는 나를 혹이라도 불쌍히 여기사
주님께서는
또 다시
당신의 침으로 진흙을 개어
내 눈위에 붙혀주시며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실지.....
이번엔 기여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곧 실로암에 가서 씻을 것입니다
지상엔 엉뚱한 실로암들이 어찌나 많던지....
제일 엉뚱한 실로암은 바로 자기가 보냄을 받은 자의
입술인양 자기 입술로 스스로 판 웅덩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노예였던 이스라엘이 출애굽시에는
덕지 덕지 묻은 죄의 노예 근성들을 전신에 달고서도 홍해를 건넜습니다
허나 가나안 입성은 오직 두 사람이였습니다
광야 사십년동안 아무리 가르쳐도
불신의 죄악을 씻지 못해 그 죄가운데 그만 죽고 말았기때문입니다
출애굽은 했는데
가나안은 못들어갔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구원은 되였는데
성화는 못되였다는 말입니다
성화의 작업이 안되면
구원의 즐거움마저 상실되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끊임없이
성경이 죄라 말한 것을
죄인줄 알고 회개하는 작업을 하는 것
곧
그것이 성화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해
표적으로 삼았던 유대인의 죄가
그때나 이제나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증거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국가적으로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
성경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 고백한다면 그것이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어찌 하나님을 볼 것이며
어찌 우리 스스로 성경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까?
어차피 우리 모두는 숙명적인 소경들인데 말입니다
너희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는
주님의 의중을 살펴보며 차라리 나는 소경입니다 라고
죽는 날까지 주님앞이나 사람앞에 고백하는 것이 그분의 긍휼함을
입는 지혜라는 것을 깨닫는 이 밤을 주신 성령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