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
작성자명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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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2.02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요한복음9:14)
언제부턴가,
앉아서 구걸하는 소경된 사람을 길 갈 때에
눈을 크게 떠봐도, 눈을 씻고 보아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부국에 끼었지만,
그렇다고 소경이 맘 놓고 다닐 만큼 배려된 길은 마땅치 않은지
쉽게 길에서 마주칠 수조차 없는 세상이다.
막내 동생에게서 ‘이런 비극이 어디있느냐?’
6살 큰 딸이 나으니, 생후 2달된 아기랑
눈병으로 밤탱이 되어 이제는 제 신랑이 떨고 있다한다.
세상이 어찌되어가는지, 나 어려서 볼 수 없었던
전염병이 사시사철이요, 추운 겨울철에도 기승을 부려
밴질밴질한 사춘기 악동들에게 눈병 방역은 골머리를 앓게 한다.
며칠 전 함께 자던 그 동생이 새벽에 가위에 눌리기에
흔들어 깨우니, 가위 눌리기만 하면 꼭 자신이 어려서
망망한 고향의 가을 들판 한 가운데서 새를 쫓는 악몽을 꾼다한다.
동생은 너 댓살 어려서부터 혼자 집을 지키고,
조금 더 자라서는,
새를 쫓으며 집안 일을 도왔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작은 여자 아이가 큰 집을 지키며,
마당에 들어서는 사람에게는
“어른이 안 계셔요”말할 수 있었던 세상!
동생은 악몽이라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악몽이라니
악몽이라지만, 차라리 귀여운 편이다.
불과 20~ 30여 년 전 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구석기 시대를 이야기 하는 거 같다.
대개의 여자들이 나이를 불문하고
성폭력의 잠재적인 위험에 두려움을 느낀다는데
요즘 들어서는
차가 옆에서 지나가기만 해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당연히 나도 그렇다.
엊그제 어스름한 무렵
사람이 오가는 공원의 길목인데도
저버저벅 걸어오는 남자의 발걸음 소리가 예사로이 들리지 않아서
괜한 껌을 뱉은 시늉을 하며, 먼저 앞서 가게 하고
밤늦게 끝나는 목장예배 후에는 집의 주차장에 들어서서
몇 초면 되는 놀이터를 두고 빙 둘러 정문 앞을 통과한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전란 중의 인사가 오늘 날 다시 부활해도 될 듯하다.
설 날 가족이 모여 큐티하면서
이번에 새삼 놀란 것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은 그래도 원칙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소할 조건을 찾기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기도 하면서 자기 죄를 보기도 하고
‘묻자와 가라사대’도 잘하니
묻지 마 범죄, 이유 없는 살인의 세상에서 큐티하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또한 차라리 귀엽다는 생각 마저 든다.
세상이 어찌되는지..
토요일 도착한 남편과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그 이틀 전 막 친정을 다녀온 나는 눈치로 보아
남편이 싫어하는 오라버니를 만나고 온 것이다.
주일 예배에 출발하기 전
오라버니 회사에서 남편의 역활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안 가면 안 되겠느냐고 괜한 질문을
던졌을 때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의도 63빌딩 곁을 지나면서
“그냥 오빠 마음 편하게 해줘” 한 마디 하는 순간,
갑자기 폭발하면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오라버니와 내게 욕을 퍼부었다.
이게 웬만해야 하는데,
단지 그 한 마디가 뭐라고, 이리저리로 도로를
종횡무진 차선을 바꿔가면서 운전을 하는 상황이니 대책도 없고
그래도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한 마디 하려는데, 마침 그 순간,
“듣고 침묵하고 기다릴 수있는 능력을 주세요”
기도제목이 떠올라 입을 꾹 다물고 들으며,
날선 검에 베어진 창자는 피를 흘리는 듯하다.
교회 마당에 도착하여 내리니
안경 속에서 눈물이 비어져 나오는데
다행히 햇빛이 반짝인다.
앞서 걷다가 옆으로 다시 돌아와
“웃어? 웃으란 말야? ”
명령했다.
참혹한 상황에 웃음이라니.!
넌 뭐가 잘나서 그러고 있는데... 맞서서
한 판 붙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
아니 누가 나를 알아본 담,
정말 아는 사람을 만나 본지도 오래인데...,
계단을 올라 강당 곁을 지나면서
순식간에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가
바로 ‘나’란 사실을 처음 듣듯이 깨달아 진다.
부들부들 떨면서 숨 죽이며, 한 숨쉬며
부끄러워하며 수치스러워하며..... 그렇게 몇 년을
오픈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아 나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잡 것이요, 비류요,
.....아무 것도 아니다.
게다가 누군 나를 성공했다고도 하고,
그러고 보면 질투의 시선도 있었던 것도 같다.
내가 속한 레벨이 어떠함인가?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의 과녁에 딱 맞는
그 자가 바로 나다!란 사실을 깨달아 진다.
며칠 전 “성공인자” 운운하며 큐티할 적에 몇사람이나
중심이 받아들여 질까? 이상히 여김받으리란 생각도 있었으나,
100% 내편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그대로 오픈함으로
유월해가니, 응답으로 주셨다.
윤리학적으로 도덕적으로 구속사적으로
성도의 정체성을 말하는 것을 지나
바로 내가 그 사람이라는 것이 확연히 깨달아 진다.
출입문 앞에서 그에게 자신의
온전한 십일조 봉투를 건네주니
흘낏 받아들고는 감사하게도 함에 넣었다.
인터넷 뱅킹으로 허겁지겁 밀린 숙제 마치듯 하던 것을
돌이켜서 미리 토요일에 은행에 들러 준비하기로 했는데
두툼하지 않은 봉투로 혹시 ‘기마이’가 없다고
지난 주 설교 후 우리가 온전하게 십일조를 약속했어도
설마했는데....감사하고,
그 상황에 후유~ 큰 위로가 된다..
설교를 들으며 소경된 눈이 떠졌다.
길리운 다메섹 엘리에셀‘ 후사로 알고 있었던 아브라함이 나요!,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보시오” 오늘의 본문 소경의 부모가 나인 것이다.
오!
문제의 중심은 나, 나, 나다.
밖에 나가서는 칭찬도 듣는 아들이
오직 한 사람,
엄마 보기를 원수 보듯이 하며 못생긴 것도,....
하여간에 안 좋은 일은 몽땅 일일이 세어가며 엄마인 내 탓이라는 소리
네가 남편을 어떻게 훈련시켰기에 저 모양이냐?
네가 원망스럽다는 오라버니의 원망!
당신이 오픈한다고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고 다니니,
당신의 혀가 문제라는 남편의 분노!
정말 옳은 말씀이다.
피차 쟁론한 거리가 없다.
하나님
남편을 2년만 집으로 보내주셔서 교회 훈련받도록 해주세요
하나님
오라버니를 혹시 주일에 일대일 양육 훈련을 받게 해주실 수는 없는 건가요?
하나님
아들을 교도소 학교로 보내주셔서 변화시켜주실 순 없는가요?
가 아니다.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주님은 나를 보시고 나의 변화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적어도 목적은 의심할 여지없이 깨닫게 된 것이다.
미쳐가는 세상에 함께 미치지 말고
남자들을 미쳐가게 만들지 말고
자나깨나 남자 조심, 내 남자들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