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따로 속따로
작성자명 [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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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9.01.29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8:37)
유대인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신들의 선민 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그들 삶 가운데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8:41)
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는 하나님뿐이라고
아비 마귀의 행사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반론을 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죄인의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육적인 혈통을 내세우는 그들의 삶은
표면적 아브라함의 자손의 삶이었습니다.
수요예배 전
아내가 좋아하는 바지락 칼국수 집을 들렀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쳐 가는데 휴대폰이 울립니다.
거래선 입니다.
대금결제를 독촉하는 내용일 것이 뻔하고
퇴근 시간이후에도 전화해대는 것이 싫어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는데
기분이 아주 상하는 소리를 합니다.
대금이 밀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결제를 별로 어긋나게 한 일도 없고
최근 사무실 사정이 어려워 늦은 것인데
좀 심하다 싶어 기분이 상해 왔습니다.
사실 그 업체의 실수로 손해를 본 일도 있는데
그냥 묵인하고 넘어간 것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이재(理財)만 밝힘이 몹시 불쾌하였습니다.
교회에 와서 찬양을 드리면서도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어떻게 골려주고 대금을 지불할까
아니면 대금을 주지 말고 골탕을 먹일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면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어도 다시 그 생각을 곰씹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평정을 찾을 때 까지
예배의 시간이 은혜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거룩한 척 예배당에 몸은 와 있지만
표면적 그리스도인으로 죄를 짓고 있는
겉따로 속따로의 위선자가 바로 저 이었습니다.
결코 바른 모습이 아니었지만
아직 살아있는 나를 잠재우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속으로 죄를 짓고 있는 나에게서 자유하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말씀에 순종하여 내 자유를 포기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얻기를 소망합니다.